배에 오르며
장석남
배는 낡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나는 오가며 이 배를 본 지 오래다
내가 이 배에 오르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저 강가에 오래 전부터 있을 뿐이었다
주인이 있는지 버려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배는 맑았고 부서진 데도 없었다
내가 오늘 이 강변에 오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은 마른 풀들 뿐
이곳에 이르게 된 까닭을 아는 것은
소매 끝의 바람과 가끔 이어진 콧노래, 희미한 휘파람 뿐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것들은 알고 있으리라
적절히 배는 강가에 붙어 있다
숨 쉬듯 아주 조금씩만 움직인다
나는 조심하며 배에 한 발을 딛는다
그리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나머지 한 발은 마저 디뎌
나의 모든 것을 배에 실었다
배는 나를 맞아 흔들리고 내려 앉는다
내가 살아온 내력일까? 이 무게가?
약간 기울어진 채 잠시 앉아 하늘을, 풍경을 둘러보려니
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배는 조용히 강변을 떠나고 있었다
배는 묶여 있지 않았고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가르며 조금씩 앞도 뒤도 없이
나아갔다
잠에 들듯 나는 물 위로 나아간다
물은 잔잔했다
나는 허기가 문제였긴 하나
물빛에 웃음을 주며 앉아 있었다
-전문(p.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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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봄(89)호 <신작시> 에서
*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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