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
정성환
사람 마음처럼 나무도 걸어서 천릿길 갑니다
서귀포 표선면 녹산로 눈부신 벚나무도
춘삼월에 닷새를 걸어
부산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까지 오는 걸 봅니다
봄은 짧아도 인연은 길어
버릴 수 없는 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둘러 피었다가 쉽게 가버리더라도
나무가 품고 있는 꽃이
그대 다시 불러오니
불 꺼진 마음에 모처럼 불을 켭니다
나무에서 나무까지
제주에서 물고 온 별들 걸어두면
사람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다 지나갈 거라고
흐드러진 향기로 상처를 씼습니다
-전문-
* 기상청의 벚꽃 군락지 부산 관측 장소.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 벚나무 5그루가 부산 개화의 기준이 된다. '기준목'의 한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피었을 때를 개화로 본다.
해설> 한 문장: 서귀포 벚꽃이 "춘삼월에 닷새를 걸어/ 부산 남천2동 주민자치센터"에 도착하는 과정을 시적 화자는 사람살이의 알레고리로 보여준다. 생명붙이의 기본원리로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봄날 꽃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봄은 짧아도 인연은 길"다는 시적 진술은 시적 화자가 끝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사람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워도/ 비워도 버릴 수 없는 꽃 같은 사람"이란 결국 영원히 비워낼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고 모든 사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 시집은 결국 비울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추적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꽃"의 진정한 의미도 "그대 다시 불러오"는 데 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꽃이란 대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이 세계의 정화精華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꽃이 사람으로 환치되는 장면은 시적 화자의 중심된 가치로서 사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꽃이 "제주에서 물고 온 별들"로 형상화되었다가 다시 "사람에게 버림받은 사람들"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사람살이에 대한 연민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꽃의 향기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발상 속에는 사람살이에서 빚어진 상처를 치유하는 원혼적寃魂的 제의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다. (p. 시 39/ 론 112-113) (우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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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남천2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 2023. 6. 9. <문학의전당> 펴냄
* 정성환/ 2017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이라는 이름의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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