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허깨비/ 곽남경

검지 정숙자 2023. 4. 21. 13:49

 

    허깨비

 

    곽남경

 

 

  누가 누구의 그림자를 죽였나, 골목골목 모퉁이에 살고 있던 이름도 남지 않을 얼룩은 어느 구석에도 묻을 수 없어 냄새가 표정으로 바뀌어 희색 바닥에 가라앉은 후에 가볍고 빽빽한 무채색의 세계를 떠돌다 사라지고

 

  설익은 아지랑이,

 

  미세하게 떫은 향으로 바람이 불면 감정은 잠시 그늘이 된다 어두운 햇볕에 젖었다가 이내 말라가는 증발 직전의 빨래처럼 희미해졌다가 잘 마른 빨래처럼 이내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는

 

  있었다 없었다,

 

  거리는 종종 초점이 맞지 않아 시야도 시선도 그저 흔들리다 흔들리다 어느 한 곳에 고이면 그제야 희미하게 색소 옅은 빗물이 되고 그걸 눈물이라 부를 뿐이고 잠시 웅덩이가 되었다가 금세 마를 발자국을 찰박이며 사라지는

 

  도회의 그림자,

 

  비둘기가 많은 거리에서 잠시 발을 돌려보면 비둘기가 어떻게 울었는지 그 소리는 기억에 남지 않아 푸드덕 날아가면 색이 없는 희미함만 남아 아직 죽지는 않은 비릿한 향이 되고

 

  모퉁이를 지나, 골목을 향해 손을 뻗으면 손샅으로 바람이 빠져나가 저 멀리 가까이, 또 다른 그림자가 생기고

 

  금세 다른 일인 양 일이 반복되고

     -전문(p. 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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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詩魔』 2022-가을(13)호 <시마詩魔 2>에서

  * 곽남경/ 2017년 제38회 배재대학교 <배재문학상> 시 부문 & 2018년 제39회 배재대학교 <배재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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