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외 1편
최춘희
내 이름 속에 봄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봄을 찾아 멀리, 더 멀리 떠돌아다녔지요 눈 내리는 날 태어난 눈의 아이, 겨울 왕국의 얼음 세포가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든다고 믿었어요 눈 폭풍이 휘몰아칠 때마다 두려워 도망쳤지요 불빛 없는 북극의 얼음 굴에 몸을 숨기고 봄이 나를 찾아 주길 기다린 적도 있어요
천변 풀밭에 원앙 한 쌍 사이좋게 모이를 쪼아 먹고 있네요
물 위를 천천히 오리들 떠다니며 햇살 아래 평화롭게 놀고 있어요
이 가지 저 가지로 참새 떼 옮겨 다니며 재잘재잘 노래 불러요
까치들도 반갑게 인사하며 소식 전하고 여기저기 날아다녀요
어둡고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이
귓가에 따스한 숨결 불어 넣으며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잿빛으로 물든 우울한 풍경 눈사람처럼 천천히 녹아내리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바람이 불어와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 발걸음도 새털같이 가벼워 보이네요
오늘이 빙점을 깨뜨리고 나온 첫, 생일입니다
-전문(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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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봄날
봄비 오시니
마음이 젖는다
젖은 마음은 속옷까지 적시고
해진 운동화 밑창까지
철 버덕 철 버덕
물이 차오른다
아버지 가신 뒤 해마다 봄이면
저 먼 얼음 벌판을 날아와
떨어져 내린 꽃잎 한 점 물고
새 떼들 빗속을 뚫고 지나가고
기억의 칩 속에 탄피처럼 박힌
병상의 아픈 눈빛 같은 꽃망울
빈 입 벌려
흠뻑 목을 축인다
괜찮아 괜찮아 젖은 등짝 다독이며
오늘도 봄비 내리고
빗속을 자박자박 어린 내가
더운 김 피어오르는 둑방 길
아버지 손잡고 걸어가는
짧은
봄날
-전문(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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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봄의 귀를 갖고 있다』에서/ 2023. 3. 10. <시작> 펴냄
* 최춘희/ 경남 마산 출생, 1990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종이꽃』『늑대의 발톱』『시간 여행자』『초록이 아프다고 말했다』『소리 깊은 집』『늑대의 발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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