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채굴
이도훈
한 입 베어 먹고 잊은 사과에
개미 떼가 붙어있다.
뜨거운 햇살이었다.
하얀 속살을
침이 흐르도록 베어 문 기억이 선명하다.
그새 사과는 꽤 많은 양의 채굴을 당한 듯 헐렁해졌다.
한쪽 무게를 잃은 지구 내부의
표본 같은 모습이다.
사과는 얇은 껍질에 둘러싸인
달콤하고 신맛 나는 지층
햇볕의 각도를 재는 시시각각의 각도기쯤 될 것이다.
아직 익지 않은 파란 쪽은
햇살을 피해 숨은 달의 뒷면 같은 곳이다.
끝까지 먹어 치우지 못한 것들엔
저렇게 검은색이 묻는다.
껍질이 허물었으면
그 알맹이를 남기지 말 일이다.
사과는 여름 내내 태양을 채굴한다.
그 일로 태양은 가끔 흐린 날이 되기도 한다.
그런 사과를 채굴하는
잡식의 존재들이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어쩌다 남겨 놓은 것들엔 개미 떼가 까맣게 달라붙는다. 햇살은 뜨겁고 현재는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검게 상하고 만다. 또 시인은 껍질이 있는 것들은 허물었으면 끝까지 먹어 치워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껍질이란 생물의 보관 용기이지만 한 번 열면 두 번 다시 닫을 수 없는 제한적 용기容器이다. 일상의 기회들이란 다 그렇다고, 한 번에 먹어 치우기엔 많고 나누어 먹을 방법은 없다고, 막다른 기회의 조각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상은 사물이나 인식을 넘어 일련의 체득에 자신을 충돌시키는 것이다. (p. 시 108-109/ 론 133-134) (박해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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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봄날은 십 분 늦은 무늬를 갖고 있다』에서/ 2022. 11. 29. <도훈> 펴냄
* 이도훈/ 2015년 월간 『시와표현』로 등단,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맑은 날을 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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