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깨닫다 2 외 1편
서안나
관흉국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
존귀한 이는 옷을 벗고 비천한 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들고 다니게 한다.
-산해경
달걀을 놓쳤다
내가 깨트린 새의 얼굴
흰빛으로 가득 찬
어떤 뭉클함
새의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부서진 새
그리하여 세상의 모서리가 흩어진다
아름답게 사라지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물로 가득 찬 것들의 눈은
진흙 냄새가 난다
대화할 수 있다면
느린 화살나무여도 괜찮다
대화란 늘 아픈 것이라
기억 속의 사람들이 모두 아프다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 않게
미학적 거리란
커다란 개의 이빨 자국처럼
차고 깊은 상처
기침을 하면
화살이 꽂힌 흰 새가 튀어나온다
심장 근처까지 다녀온 게 틀림없다
-전문(p.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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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는 통증
새는 내 눈에만 보이는 통증
누가 죽은 새를 내 머리 속에 넣었나
나는 늘 길을 잃었다
새에 집중하면
화요일은 죽은 사람의 기분
추한 자들도 슬픔 속에선 가인이 된다
새는 한 사람의 저녁에
느리게 도착하는 감정
새의 첫 장을 펼치면
다정의 뒷면
구겨도 펼쳐지는 새는
당신의 밤에 가깝다
이 빈약한 저녁은 어디서 오는지
새의 밤이 달려온다
그대와 나는 등을 맞대고 조금 다정하다
이젠 골목에 부딪히지 않아도 될까요
그러니 새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새는 진흙에서 뱀을 꺼내는 마술
아직 죽지 못한 것들의 눈빛을 만지는 것
잘 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문(p. 102-103)
해설> 한 문장: 본질적으로 이 새는 벗어남 그 자체, 날아가고 미끄러짐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존재로부터 낯설게 되기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는, 그러므로 새가 되는 존재이다. 이 새를 자아가 외부를 낯설게 포착하여 얻어낸 것이라거나, 낯설지 않은 것을 낯설게 한 것이라는 기성의 시론을 대입해서는 충분치 않다. 스스로 스스로에게서부터 낯설어지는 어떤 동력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새로부터 벗어날 때 새는 회귀한다는 역설이 여러 시편을 통해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리하여 "새의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부서진 새"(「새를 깨닫다 2」)는 세상의 모서리를 흩어지게 하는 동력이 된다. 분류와 배제의 논리를 통해 무언가를 규정함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모서리, 즉 경계는 세상의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주체와 대상(때론 시인과 언어··· 언어와 시인인가?) 사이에는 위계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계에 포착되지 않는 새는 이 모서리를 교란하는 존재이다. "구겨져도 펼쳐지는 새"(「새라는 통증」)는 세계의 모서리를 교란하며 깨어지고, 화살에 맞기도 한다. 구겨지고 깨어짐으로 언어를 회복한다. 이 새를 시인이라고 말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p. 140-141) (육호수/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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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에서/ 2022. 9. 30. <여우난골> 펴냄
* 서안나/ 1990년『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 평론집『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정의홍선집 1, 2』『전숙희 수필선집』, 동시집『엄마는 외계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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