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칼
함태숙
저는 무결로부터 왔는데요
당신처럼 두 개의 심장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미학처럼 저를 이끌고 가는
미지가 몸속에는 있습니다
급냉각한 화산의 부유물처럼 겨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존재란,
자기가 인식한 자기 두려움의 외연입니다
강함과 무름을 똑같은 밀도로 채워 넣고
찌름과 찔림을 하나의 사건 속으로 껴안고
서서 우는 지평선입니다
새로 돋는 별들을 다 떨구어 버리는
해체와 봉합의 밀크웨이를
저는 또 한 번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주검만이 당도할 극지가 있으므로
쌍별을 찾듯이 원수를 찾아 헤매는
기이한 사랑이 있습니다
입술을 열면 비명의 입구에서 얼어버리는 언어가
축문을 읽듯이 그 스스로를 애도하며
올라오는 첫 잎사귀가
거듭거듭 오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봉헌하는 순간이
곡선으로 이으면 춤이 되는 시간이 주검에서 뽑아 올린 치아처럼
미지를 뒤덮는
우리의 너머에는
우리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실을 토막 내고 돌아오는 망각의 모습으로
다시 무결해지는 아버지
저와 같이 당신도 두 개의 심장입니까
-전문(p. 14-15)
해설> 한 문장: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이자 고대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잇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만들어진 칼은 고대 철기시대 최고의 검 제조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겹겹이 쌓아 두드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칼은 독특하고 고유한 무늬를 띤다. 시인은 다마스커스 칼을 소재로 하여 연금술의 상상력을 덧입힌다. 시에서의 화자는 칼의 목소리를 빌려 아버지와 대화한다. 화자는 무결로부터 왔으며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고 미지를 몸속에 숨긴 존재이다.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급냉각한 화산의 부유물처럼" 가장 단단하고 강인한 칼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몸을 가리켜 "강함과 무름을 똑같은 밀도로 채워 넣고/ 찌름과 찔림을 하나의 사건 속으로 껴안고/ 서서 우는 지평선"이라고 지칭한다. 즉 연금술의 과정을 인간들의 수난사와 유비하여 제시한다.
당시 칼이 가진 운명 중의 하나는 죽음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다. 칼은 잘못 쓰면 죽음을 완성할 수 있고 그것을 "주검만이 당도할 극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쌍별을 찾듯이 원수를 찾아 헤매는/ 기이한 사랑"이 칼이 가진 운명이다. 이런 운명은 언어의 운명과도 유비된다. 언어는 "입술을 열면 비명의 입구에서 얼어버리"기도 한다. 시에서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무결해지라고 말하는 절대자이자 우상의 상징이다. 다마스커스 칼이 가진 두 개의 심장을 이미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신의 숙명을 인식하는 구원자이기도 하다. (p. 시 14-15/ 론 122-123) (이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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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토성에서 생각하기』에서/ 2022. 12. 28. <문학의전당> 펴냄
* 함태숙/ 강원 강릉 출생, 2002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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