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폭우 이야기 외 1편/ 김지율

검지 정숙자 2023. 1. 11. 01:17

 

    폭우 이야기 외 1편

 

     김지율

 

 

  갑자기 쏟아진 폭우였다

 

  창문으로 문 안으로

  비가 몰아치고

  현관으로 거실로 비가 들이쳤다

 

  도로 위로 큰 개가 떠내려가고

  방 안에서 나갈 곳을 찾지 못해

  퍼덕이는 새와 눈이 마주쳤다

 

  작은 식탁과 어항

  빨간 트렁크가 떠내려갔다

 

  복도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콘센트가 잠기고 의자가 잠기고 뒤뚱뒤뚱 거위는 날아오를 수 있을까 새로운 날씨와 떠내려간 말들은 돌아올 수 있을까

 

  폭우 속에서 망가진 우산과 부리 속에 넣어 준 검은 잎

 

  물을 퍼내면

  물이 들어왔다

 

  미끄러운 기억들은 순서대로 침묵하고

  순서대로 침착했다

 

  쏟아지는 비를 퍼내며

  건널목에 두고 온 작고 흰 개를 생각했다

  비가 그칠 때까지

  나는 그 장면 속에서 계속 물을 퍼내고 있었다

     -전문(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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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은 박수가 아니라고

 

 

  콩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한 요가 선생님은

  구운 서리태만 먹다가 이민 갔다

  배에 주는 힘을 다짐이라 말할 때

  해야 할 말과 하지 못하는 말이 자주 헷갈렸지만

 

  너에게서 태어나

  나에게서 죽던 비밀처럼

  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누군가의 신발은

  과거일까 미래일까

  하나의 마음을 지우면

  하나의 얼굴이 사라지고

 

  바다가 범람할 때까지 춤추는 고래가 되어라

 

  전단지 위에 전단지를 붙이며

  진짜 끝내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네가 돌아보지 않는 등은

  불 꺼진 창문 같고

  들키지 않기 위해 화단에 뿌린 씨앗처럼

  꽃잎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엔딩은 박수가 아니라고

 

  그것은 다만,

 

  부서진 난간과 봄밤의 일이라고

     -전문(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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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에서/  2022. 10. 15. <파란> 펴냄

  * 김지율/ 2009년『시사사』로 시 부문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 대담집『침묵』, 에세이집『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들』, 저서『한국 현대시의 근대성과 미적 부정성』『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