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김수예
첫사랑은 은총같이 와서 기준이 된다
중년의 커플이 식전 알약을 나눠 먹는다
일상과 일탈 사이 쪼개어 쓰고 온 것들
배깃구에서 식판을 챙겨 내밀며
궂은날 국화 향을 따라 흐르며
베이지의 외투 깃과 민트 빛 스카프 사이
검은 선글라스가 반백의 광대에 걸려 있다
굵은 눈웃음을 당겨 셔터를 눌러댄다
휴일의 늦잠과 감성의 극성 사이
노스탤지어와 강남스타일 사이
반짝임은 마모되고 손때에서 윤이 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모든 존재는 '사이'를 공유한다고 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사이'가 없으면 당신은 당신이 될 수 없고 나 또한 존재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당신일 수 있게, 내가 나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사이'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으로 여겼고, 그랬기 때문에 '사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사이'를 뭔가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지요. 그래서 당신에게 뭔가를 바쳐왔고, 당연하게도 당신이 뭔가를 해주기를 열망해왔습니다. 김수예 시인은 그러한 강박과 열망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용하고 있는 시에서 "일상과 일탈 사이"를 비롯한 모든 '사이'를 사랑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김수예 시인의 시를 '사이'의 시학이자 '사랑'의 미학으로 읽고 싶습니다. (p. 시 11/ 론 114-115) (문신/ 시인 ·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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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피어나 블루블루』에서/ 2022. 10. 13. <한국문연> 펴냄
* 김수예金洙禮/ 2020년『포엠포엠』으로 작품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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