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소고小考
박수중
이름이 사람인데
누구지?
순간 대면한 친구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망각의 순서는 명사名詞 그 중에서도 이름이 먼저다
우선은 만난 지 오래된 이름부터일 것 같은데
실상은 무언가 인연의 강도에 따라 좌우된다
잊어도 별 상관없는 이름이 있고
반대로 무덤에 들어가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이 있다
때론 잊지 않기 위하여 메모를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메모조차 해석하지 못한다
완전히 잊었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그 이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눈빛으로 서로 소통하는 관계가
망각을 잊게 하는 방법이다
내 우처愚妻 이름은 불러본 지 수십 년인데
사실 이름이 왜 필요한가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각자 특징으로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늑대와 춤을'*하면 안 될까
-전문 (p. 73-74)
* 늑대와 춤을: 영화 제목
--------------------
* 『월간문학』 2022-8월(642)호 <시> 에서
* 박수중/ 황해도 연안 출생, 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꿈을 자르다』『볼레로』『크레바스』 『클라우드 방식으로』『박제』(戀詩集), 『규격론』(規格論)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 멀리 있는/ 정공량 (0) | 2022.09.21 |
---|---|
달동네의 아침/ 박종철 (0) | 2022.09.21 |
카를교/ 권기만 (0) | 2022.09.20 |
석류, 웃다/ 최순향 (0) | 2022.09.20 |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4/ 정숙자 (0) | 202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