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름 소고(小考)/ 박수중

검지 정숙자 2022. 9. 20. 02:36

 

    이름 소고小考

 

    박수중

 

 

  이름이 사람인데

  누구지?

  순간 대면한 친구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망각의 순서는 명사名詞 그 중에서도 이름이 먼저다

  우선은 만난 지 오래된 이름부터일 것 같은데

  실상은 무언가 인연의 강도에 따라 좌우된다

 

  잊어도 별 상관없는 이름이 있고

  반대로 무덤에 들어가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이 있다

  때론 잊지 않기 위하여 메모를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메모조차 해석하지 못한다

  완전히 잊었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그 이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눈빛으로 서로 소통하는 관계가

  망각을 잊게 하는 방법이다

  내 우처愚妻 이름은 불러본 지 수십 년인데

  사실 이름이 왜 필요한가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각자 특징으로

  '머리에 부는 바람' '주먹 쥐고 일어서'

  '늑대와 춤을'*하면 안 될까

     -전문 (p. 73-74)

 

    * 늑대와 춤을: 영화 제목

 

   --------------------

  * 『월간문학』 2022-8월(642)호 <시> 에서

  *  박수중/ 황해도 연안 출생, 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꿈을 자르다』『볼레로』『크레바스』 『클라우드 방식으로』『박제』(戀詩集), 『규격론』(規格論)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 멀리 있는/ 정공량  (0) 2022.09.21
달동네의 아침/ 박종철  (0) 2022.09.21
카를교/ 권기만  (0) 2022.09.20
석류, 웃다/ 최순향  (0) 2022.09.20
공우림(空友林)의 노래 · 24/ 정숙자  (0) 202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