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바다숲 소리를 불다 외 1편/ 김응혜

검지 정숙자 2022. 9. 15. 02:57

 

    바다숲 소리를 불다 외 1편

 

    김응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면 포의수에서 둥둥 떠다니던

  아득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그렁그렁한 둥지에서 자유로운 비행을 하던 친밀한 길을 따라가면

  바다숲에서  불어오는 피리소리가 들린다

 

  아주 먼 옛날 지구에 물이 채워질 때에도

  경쾌한 피리소리 들렸으리라

  어미의 탯줄마다 안온하게 이어져온 이 소리

 

  바다가 갸르릉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면

  김 씨는 어린 오남매에게 낚싯대 하나씩 들려

  파도가 몰로온 은빛 꿈을 한 소쿠리씩 거둬들였다지

  그저 발만 참방거려도 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왔다는데

 

  온난화의 열기로 이마가 뜨거워지고

  탄소와 미세 플라스틱이 잦은 기침을 토해내자

  종내 귀까지 먹먹해져버린 바다

 

  고대부터 줄밥 뿌려 바다를 잠재우듯

  바다식목일이면 해조류 심어 바다를 달랜다는 김 씨

  번잡한 생각 바닥 깊이 내려놓고

  조붓한 미역과 톳 모자반 해삼 전목 등의 화음을 

  건져올리는 꿈을 꾸겠지 

 

  바다 호흡 이해한 그는 파도꽃 필 때마다 총총 들려오는

  피리소리에 휘파람 불어 화답하겠지

  바다와 함께하는 긴 호흡이 에너지 가득한

  생명의 시작이고 끝임을 써 가겠지

     -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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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오후의 중얼거림

 

 

  요리조리 각 잡고 셔터 살짝 누르면 

  쏜살같이 파고드는 프레임 안의 세상에

  나, 반쯤 걸쳐있다

 

  무심한 듯 잘려나간 배경에 대해

  안타까운 거리에 대해

  멈춰버린 시간에 대해

  슬며시 의문이 일면 튕겨져나간

  기억 밖의 기억을 동그랗게 세우고 걸터앉아 본다

 

  의도치 못한 프레임 밖의 세상은

  새것을 얻기 위해 버린 옛것이었을까

  부지중에 지나쳐온 3차원의 세상 같은 것이었을까

  쏜살같이 흘러내리는 유성 같은 것이었을까

 

  별꼬리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기억 밖의 기억을 호출하려는 듯

  강한 바람 한 줄기 급하게 내려와

  나를 전송하는 호흡의 파동 하나 긋는다

      -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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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황학산에 들다』에서/ 2022. 6. 25. <리토피아> 펴냄 

  * 김응혜/ 충남 대전 출생, 2022년『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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