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이 따라오네
김미경
우리의 처음은 작약이었다
꽃인 줄도 모르던 꽃시절
환하게 빛나는 그것의 무리를 보며
선뜻 줄기에 손댈 수 없었던
유월의 흔들림을 식혀주며
사춘기로 피어나던 꽃
우리라는 시절
그녀는 공장으로 떠났고
어설픈 핀컬파마와 나팔바지로 도회지에 물들던 그녀
사랑이 다 피기 전에 꽃잎 떨어진 작약처럼
흩어지려는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든 붉음을 배에 품은 겹작약처럼
그늘진 골방으로 들어갔던 그녀
어시미 들녘에 골바람 윙윙거리는
그믐밤의 해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를 떠나보내고
떠난 그녀
그믐달을 볼 때마다
휘어진 길을 가야 하는
그녀, 총총총 서두름이라는 꽃말이 따라가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우리라는 시절"의 기록은 무수한 "꽃말"들로 이루어진다. 꽃말이 품은 의미를 따라 어떤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이다. 김미경에게 꽃말이란, 자연물(꽃)의 숨겨진 의미를 지금 이곳의 황폐한 삶에 투영시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눈으로만 보지 말고 촉감과 향기까지 느껴봐야 한다. 위 시에서 등장하는 "그녀"의 삶은 과거 "사춘기"부터 지금의 "그늘진 골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지금까지 꽃말로써 기록되어 왔다. 소녀 시절의 풋풋한 감성과 함께, 아이를 떠나보낸 어미의 단장斷腸이 작약빛과 뒤섞인다. 환하게 빛났던 시절("꽃시절")과, 이제는 시들어버린 "붉음" 사이에서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운명적 예감이 엿보인다.
감춰진 의미들로 조금씩 쓰인 처연한 삶의 기록이자, 생의 호흡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서 증명될 것이다. 냉혹하기 그지 없는 기계적 세계("공장") 내에서 이제는 황폐화해져 버린 비참한 삶("골방")으로 내몰렸기에 꽃말의 숨겨진 의미라도 붙잡아야 했으리라. 아무리 그 끝이 어딘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휘어진 길" 위에 서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럼으로써 여전히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간절한 호흡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p 시 20-21/ 론 120) (정재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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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그녀를 동백이라고 적는다』에서/ 2022. 7. 25. <상상인> 펴냄
* 김미경/ 충북 단양 출생, 2002년『문학공간』으로 등단, 시집『내 안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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