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별에 찍힌 바코드 외 1편/ 김완하

검지 정숙자 2022. 8. 27. 02:50

 

    별에 찍힌 바코드 외 1편

 

    김완하

 

 

  캘리포니아 햇빛은 강렬했다 아침 태양을 향해 차를 몰면 너무 강한 햇살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월넛크릭 파크 레이크 부근 이그나시오 플라자에서 심하게 까만 선글라스를 샀다 이 층 아파트 삼면창으로 들이치는 햇빛에 금빛 칼날 창마다 두꺼운 블라인드를 급히 내렸다 낮엔 방으로 드는 빛 차단하려 블라인드 날과 싸웠다 밤하늘에 뜨는 별은 눈부셨다 캘리포니아 별에는 바코드가 찍혀 있었다 해 없는 날도 블라인드 각에 방 안의 밝기는 달랐다 미세한 힘에도 빠르게 미끄러져 내리는 빛의 화살, 블라인드의 각을 세우면 방 안은 동굴처럼 어두웠다 흐린 날 방으로 빛을 들이려 블라인드 칼을 고를 때, 느닷없이 구석까지 환한 순간이 왔다 각을 잡으려는 찰나에도 빛은 여지없이 날을 세웠다.

     -전문 (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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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팔꽃의 힘

 

 

  열심히 시를 쓰던 20대 후반 몇 년 동안 나는 나팔꽃 씨를 받아 매년 30명에게 20알씩 나누어 주었지. 그들도 다음 해에 씨앗을 받아 30명에게 20알씩 나누어 주라 했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한반도는 온통 나팔꽃으로 활짝 피어나리라는 기대감이 아침마다 치렁치렁 꽃 피어 창을 덮었다

 

  그 나팔꽃들 어디까지 뻗어 갔을까

 

  캘리포니아에 가서 보았다

  2000년 여름 버클리대에 가서 1년간 월넛크릭에 세 들어 살며,

  가족들과 세이프웨어에서 바나나와 빵과 우유 사 가지고 올 때, 길가 전신주를 맹렬하게 감으며 타고 오르던 나팔꽃.

 

  희망 속에 씨를 묻는 것만큼 영원한 사랑은 없다

     -전문 (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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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마정리 집』에서/ 2022. 8. 1. <시작> 펴냄 

  * 김완하/ 경기 안성 출생, 1987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길은 마을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절정』『집우물』, 시선집『어둠만이 빛을 지킨다』『꽃과 상징』등, / 2010년 2016년 미국 버클리대 객원교수 역임, 현)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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