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제비/ 오연미

검지 정숙자 2022. 7. 3. 03:13

 

    제비

 

    오연미

 

 

  늙은 부부가 살던 호수 위 

  작은 카페 있었지 카페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낡았지만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햇수만큼

 

  천장에 지비집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

  그게 꼭 커피 잔 같았다

  커피 냄새인지 제비집 냄새인지

  알 수 없는 냄새가 밑에서 떠돌았고

 

  제비가 낮고 둥글게 마당을 날았다

 

  해가 바낀 겨울에 궁금해서 찾아가 보니

  빈집만 덩그러니 호수 쪽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

  커피 냄새도 제비집도 사라지고

 

  제비새끼들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 아이로 태어난 나에게

  제비 연을 넣어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의 마음이 문득 그리운 날

 

  커피 한 잔을 마시노라면 

  커피 잔이 제비집으로 보였다

 

  제비집처럼

 

  악착같은 것이 보여서

  커피를 남겼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의 이름은 '오연미' 가운데 연, 이 아마도 '제비 燕'이리라. 사전적 의미로는 신의와 의리를 중시하여 큰 뜻을 성취한다, 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은 봄.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봄이 돌아와야 제비는 거기서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시에서 발화하는 "겨울 아이로 태어난 나"는 어쩌면 사전적 의미에서 더 멀리 와버린 존재일지도 모른다. 화자가 문득 만난 장소는 "늙은 부부가 살던 호수 위/ 작은 카폐"이다. 시의 첫 행이 보여주는 이미지 '늙은, 살던, 작은'의 몽타주는 이 시의 전개가 제비처럼 날렵하거나 활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이내 발견한 "천장에 제비집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의 문장에서 '악착'에 유독 눈이 간다. 그렇게 지금은 제비도 새끼도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겨울. 화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과 연관 지어준 아버지의 시선과 교차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시인도 제비도 한때는 "제비가 낮고 둥글게 마당을 날았다"처럼 저도 눈부신 한때가 있었을 터.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말고 둥그런 커피잔이 마치 자신의 지금처럼  보여서, 저 혼자 애면글면 살아 낸 악착이 아프다. (p. 시48-49/ 론 143-144)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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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장미 감옥』에서/ 2022. 6. 24. <시산맥사> 펴냄   

  * 오연미/ 전남 해남 출생, 2012년 계간 『문학시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