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식_시는 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는가?···(발췌)/ 신천옹 : 보들레르
신천옹
보들레르/(C. Baudelaire / 1821-1867, 46세)
흔히, 장난삼아, 뱃사람들은
거대한 바닷새, 신천옹을 잡는다
이 한가로운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지치는 배를 따른다
갑판 위에 한 번 잡아 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어색하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 모양 옆구리에 질질 끈다
이 날개 돋친 나그네도 얼마나 꼴좋게 풀이 죽었는가!
아직까지도 그토록 아름다운 게, 어찌 그다지도 우습고 흉측한 몰골!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하늘 날던 불구자의 흉내를 낸다!
시인도 흡사 이 구름의 왕자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射手를 비웃건만
땅 위의 놀림판 속에 몰리고 보면
그 거창한 날개도 걸음을 방해할 따름
-전문(정기수 역 『악의 꽃』 <정음사> 1972)
▶시는 세상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또 세상은 시에서 무엇을 구하는가(발췌)_박판식/ 시인
현 세대의 시에 관하여// 보들레르의 신천옹은 가짜로 만들어낸 이미지 하나 없이 놀라운 환상의 비전과 그 비전의 추락을 대비(전통적 표현으로는 대구법)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그 시적 비전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까운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수사의 방식도 옛것에 가까운 것이지만 언제 읽어도 우리에게 신선함과 충격을 가져다준다. 또 주제의 측면에서는 형이상학이 물질의 세계에 패배하고 조롱당하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시(시인)라는 장르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느끼고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시라는 것은 어쩌면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추수하는 장르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전형적인 것 속에서 진실이나 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진술하려는 관觀이거나 언어적 방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의 시는 발견보다는 발명을, 있는 그대로의 투철한 사생보다는 몽타주나 패러디(패스티쉬)를 선호한다. ···略··· 지금 문학계를 살펴보자면 시 쓰는 사람 중에서 그 재능이 소설가가 되거나 극작가가 되어야 할 사람도 다수이고, 산문가가 되어야 할 사람도 많다는 것이 지금의 나의 소소한 걱정거리다.(p. 시 73-74/ 론 74···略···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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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學 史學 哲學』 2022-겨울 · 2023-봄 (71-72)호 <문학_시평>에서
* 박판식/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밤의 피치카토』『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