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집옥재(集玉齋)를 읽다/ 주경림

검지 정숙자 2023. 3. 11. 02:14

 

    집옥재集玉齋를 읽다

 

    주경림

 

 

  옥과 같이 귀한 보물,

  4만 권이 넘는 책을 모았던 고종 서재를 찾아간다

  경복궁 제일 북쪽 끝까지 걸어가면

  용마루 양쪽에서 청룡이 날아오르는 집옥재가 보인다

  集玉齋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다

  북송 때의 서예가 미불米芾을 집자했다

 

  대청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제 황룡포를 입은 고종

  서가에 꽂힌 천문 지리 수학 의학,

  서양의 서적들을 다 뒤적여본다

  나라의 길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창호분합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어룽거리는

  마루바닥을 망연히 바라보다

  보름달 모양의 만월창으로 후원을 내다본다

  두 그루 소나무가 뒷벽에 나란히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 그루 둥치로 남은 서러움이 북받쳐

  우물천장을 올려다본다 

  쌍용과 봉황의 날갯짓이 아무리 화려한들

  그 길에 오를 수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에 툇마루로 나와 향원정香遠亭을 바라본다

  때 지난 연이파리들이 목을 꺾은 채

  바람에 흔들린다

  향기는 저 멀리 달아난 모양이다

 

  집옥재를 나온다

  돌아보니 달개비빛 하늘을 바탕으로

  팔작지붕 위에 북악의 봉오리가 터질 듯하다

  집옥재,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었다

    -전문(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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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學 史學 哲學』 2022년 겨울 ·  2023년 봄 (71-72)호 <문학_겨울 특집 7인 시선>에서  

  *  주경림/ 1992자유문학시 당선시집 풀꽃우주 뻐꾸기창』 외 2시선집 무너짐 혹은 어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