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옹이/ 박몽구
자작나무 옹이
박몽구
한겨울 모스크바 외곽 공항에 내려
꼬박 두어 시간을 달려
예약해 둔 시내 숙소로 가는 동안
끝없이 늘어선 자작나무를 보며 놀란 적이 있다
거센 눈보라에도 허리 굽히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하늘을 바라고 섰을까
자작나무의 마르고 꼿꼿한 몸을 향해
창밖으로 몸을 훌쩍 던지고 싶었다
자작나무라면 늘 그렇게
매끈하고 단단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덥석 안으려 드니
온몸에 옹이가 박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번쩍 몸을 들어 올려
동토의 땅에서 숨을 쉬기 위해
자작나무들이 한 뼘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일어설 때마다
덧자란 가지들을 제 손으로 쳐낸 자리
쓰린 흉터로 가득했다
가난한 집 형제들
밤을 낮으로 일하면서
땀내 배인 돈 한 푼 두 푼 모아
싹수 있는 어린 동생 학자금을 마련하듯
여린 곁가지로 통하는 물관을 차단해
스스로 여윈 것들을 버린 다음
곧고 굵은 줄기 하나만 골라
새푸른 하늘로 밀어 올린단다
겨울 하늘 밀며 올라가는
자작나무를 볼 때마다
온몸에 난 상처 마다하지 않으며
질통을 메고 있는 형,
바늘로 청춘을 짓이기며 미싱을 밟았던 큰누나
라면 발보다 더 가지런하게 가발을 엮었던
작은누나를 떠올린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
동상 든 발로 눈보라 굳게 디딘 채
온 힘을 다해 어린 동생을 따뜻한 곳으로
밀고 있다는 생각에
허전한 옆구리를 자꾸 만져 본다
- 『시와정신』 2022-겨울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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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2023-여름(53)호 <신작시/ 근작시> 에서
* 박몽구/ 1977년『월간 대화』로 등단, 시집 『5월, 눌린 기억을 펴다』『라이더가 그은 직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