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주 멸시받는 농민 신분이여/ 그림멜스하우젠 : 허창운 역
<『시와반시』 2022-봄(119)호/ 문청시절 읽은 시 한 편/ 정숙자>
너 아주 멸시받는 농민 신분이여
그림멜스하우젠/ 허창운 역
1
아주 멸시받는 농민의 신분이지만
자네가 그래도 이 땅에선 가장 훌륭하다네.
어떤 사람도 자네를 오로지 온당하게 주시하여
자네를 흡족하게 칭찬할 수 있는 자가 없어라.
2
지금의 세상사는 어떠했을까?
만약 아담이 들을 가꾸지 않았다면
제후들의 선조가 되는
그 사람도 처음엔 밭 갈아서 먹고 살았다네.
3
정녕 땅이 산출하는 것,
그 모두는 거의 자네의 지배하에 있으니,
이 나라가 먹고 사는 것은,
워낙 자네 손을 통해서 가능하다네.
4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도록
우리에게 내려주신 황제도 자네의
손에 의해 살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자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는 병정들도 역시 그러하노라.
5
음식의 고기를 자네는 혼자서 생산하고,
자네에 의해 또한 포도주도 만들어지나니,
자네가 땅을 그토록 적절히 갈아주니, 대지는
우리에게 충분한 빵을 선사하노라.
6
자네가 대지 위에 집을 짓고 살지 않는다면
이 땅은 사방이 아주 황폐하리라.
사람들이 농부를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아주 침울하리라.
7
자네가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기에
자네는 높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네.
자연도 바로 자네를 또한 사랑하고
하느님도 자네의 농민 습성에 은총을 내리노라.
8
몸서리치는 통풍이 농부들에게 찾아왔다는
소리 들어 본 적이 없노라,
이 병은 귀족도 곤궁에 빠뜨리며
많은 부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네.
9
자네는 교만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특히 이런 시기에는,
그리고 그것이 또한 자네의 주인이 아니니,
그래서 자네에게 하느님이 많은 십자가를 주노라.
10
그렇지, 병정들의 나쁜 습성도
자네에게 제일 훌륭한 공헌을 한다네.
그가 “자네의 재산은 내 것이야”이야 라고 말하더라도
그 불손함이 자네를 사로잡지는 못하니까.
-전문, 『十七世紀 獨逸詩, 許昌雲 譯』(52-54쪽). 1980.3. 探求堂
▶ 문청천하시대본文靑天下詩大本 _ 정숙자/ 시인
이 시를 지은 그림멜스하우젠(H. J. Chr. Grimmelshausen/1621-1676, 55세)은 겔른하우젠 출생. 황제군에 입대 후 포로가 되기도 했고, 결혼한 다음엔 군대와 작별, 관리가 되기도 했으나, 뒤이어 음식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 중에도 소설 『달로 도망가는 방랑인』과 풍자 작품 『순례자』를 저술했다고 역자는 ‘作家의 略歷과 詩의 出處’에서 밝히고 있다.
문청 시절에 읽었던 위의 시가 지금껏 내 마음과 정신에 살아있는 까닭은 “황제도 자네의/ 손에 의해 살지 않을 수 없으며”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세상이 제아무리 발전할지라도 농부의 수고 없이 차릴 수 있는 식탁이란 없다. 우주인의 고농축 영양제조차도 기초 원료는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문청 시절, 내가 읽은 시 한 편>을 기획하고, 청탁해 주신 『시와 반시』 편집부에 감사드린다. 농부 없는 밥상이란 상상할 수 없듯이, 문청 없이는 문단 또한 존립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여 ‘농자천하지대본’ 곁에 ‘문청천하시대본文靑天下詩大本’이라는 말을 꾸려봤다. 문청- 그 이전의 시공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다시 시를 선택해 온갖 고난을 감수할 것이리라. ▩ (p. 시 118-120/ 론 120-121)
♣ [기획/문청시절에 읽은 시 한 편]에서 정숙자는 그림멜스하우젠의 시 「너 아주 멸시받는 농민 신분이여」를 소개한다. 이 시에서 정숙자는 "농부의 수고 없이 차릴 수 있는 식탁이란 없"고 "우주인의 고농축 영양제조차도 기초 원료는 땅에서 나온 것"이라는 진리를 깨우친다. 비슷한 이유로 그는 문청 시절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문청 시절의 지성과 감성을 지지해 준 위의 시를 ‘문청천하시대본文靑天下詩大本’이라 명명한다. _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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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반시』 2022 봄(119)호 <기획/문청시절 읽은 시 한 편>에서
* 허창운(譯者)/ 1940년 출생, 서울대 명예교수, 뮌헨루드비히막시밀리어안대학교 독어독문학 박사
* 정숙자/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등, 산문집『밝은음자리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