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바람 속에서/ 정샤오츙(鄭小瓊) : 박춘향 옮김

검지 정숙자 2022. 2. 3. 02:07

 

    바람 속에서

 

    정샤오츙鄭小瓊 : 박춘향 옮김

 

 

  바다에서 불어오는 사람이 거셀수록, 삶의 짠맛은 더 깊어진다

  바람 속에서 알루미늄 깡통을 쫓던 저 노파, 그녀의 발걸음은 

  바람과도 같아, 쓰촨四川*의 내륙에서 광둥廣東*의 바다로 달린다, 휘청이며, 우울하게, 꿋꿋하게

  삶의 짠 맛이 바람 속에서 점점 더 짙어간다

 

  톈졘잉田建英이라 불리는 이 넝마주이, 그녀가 기침을 한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녀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나지막한 기침소리와 함께 바람 속에서 뒤엉킨다, 가래침이

  삶의 빵 위에 뱉어진다, 피 묻은 폐는 삶의 풍파를 견딜 수 없어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그녀가 뱉어낸 삶이

  길 위에 널린 채, 차에 실려 쓰촨四川으로 향한다.

 

  1991년에 그녀가 이곳에 왔다. 아이 다섯과 병세가 위중한 남편 몰래

  그날 그녀는 34세, 동네 여자애와 함께, 그녀가 동구 밖 바람 속에서 두리번거린다.

  눈물이, 이슬과 보리의 빛을 적신다. 1996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종퇴한 맏이와 둘째를 데려왔다. 1999년,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온 가족이 황마링黃麻岺이라는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녀가 말한다. 그때 그녀는 신세기의 둥근 달3)을 보았다고.

 

  2000년, 맏이가 선전深圳4)에서 마약 투약에 밀매를 하다가 감옥으로 갔다

  둘째는 쑤저우蘇州로 갔고 셋째와 넷째는 각자 가족이 생겨 윈난雲南*과 후베이湖北*로 갔다

  남편은 성 매매를 하다가 성병에 걸렸고 다섯째는 술집에서 몸을 판다

  그동안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밤 열한 시에 잔다

  나흘에 한 번씩 고물상에 가고, 바람 속에서 알루미늄 깡통을 쫓는다

  가끔 고개를 숙여 아직 쓰촨四川 동부에 남아있는 가족을 그린다

     -전문-

 

    * 중국의 성 이름.

    3) 團圓, 쌍관어로 둥글다는 뜻이기도 하고 온 가족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한데 모였음을 뜻하기도 한다.

    4) 광둥廣東성에 있는 시명.

 

 

  아시아의 시/ 고통과 희망의 가시를 가진 시를 읽을 때_중국, 빛과 마음속에 있는 네 명의 시인(발췌)_고형렬/ 시인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바람 속에서」는 산문 노동시의 수려한 시적 고백과 함께 자해와 치유의 고발을 통한 양가적 의미를 던지는 두 바퀴의 축을 울린다. 반대편의 굴대에서 불길한 굉음이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시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야 하는 어떤 소리이다.

  시인은 "죽음이란 암울한 실패 앞에 마주하는" 삶이 다름아닌 "무의미 속에서 숱한 의미를 지어내는" 일인 것에 침묵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감당하는 노동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하는 자문과 함께 혼돈 속에서 움직이는 한 편의 시가 빛이 되는 것을 본다. (p. 시 96-97/ 론 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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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시마詩魔』 2021. 9. (제9호) <아시아의 시詩/ 고통과 희망의 가시를 가진 시를 읽을 때_중국, 빛과 마음속에 있는 네 명의 시인>中

  * 정샤오츙鄭小瓊/ 1980년 6월 출생, 「인민문학人民文學」「시간詩刊」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중국어 시집『여공의 기록』『장미 정원』『황마링』등, 프랑스어판 시집『제품 서사(Chantal Andro 역)』, 영어판 시집『별을 지나는 핀홀(Eneanor Goodman 역)

  * 박춘향/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석사 수료

  * 고형렬/ 1954년 강원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대청봉大靑峯 수박밭』 등 여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