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희_세계시론산책⑦(발췌)/ 리처드 웨스트의 죽음을 애도함: 토머스 그레이
리처드 웨스트의 죽음을 애도함
토머스 그레이(1716-1771, 55세)
미소 짓는 아침이 빛나는 것도 내게는 부질없고,
솟아오르는 태양이 황금빛 불을 치켜드는 것도 부질없다.
새들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부질없고
기쁨에 찬 들판이 푸른 옷을 다시 입는 것도 부질없다.
아아, 이 귀는 다른 노래를 그리워하고,
이 눈은 다른 것을 탐한다.
나의 외로운 번뇌는 오직 내 마음을 녹일 뿐이며
여물지 못한 기쁨은 내 가슴 속에서 숨진다.
하지만 아침은 미소를 지어 바쁜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다복한 이들에게 갓 태어난 기쁨을 안겨준다.
들판은 으레 주는 산물을 모두에게 보내고
어린 새끼들을 따뜻이 하기 위해 새들은 짖어댄다.
듣지 못하는 이를 나는 헛되이 애도하고
우는 게 부질없는 일이기에 더욱 운다.
-전문-
▶『서정 담시집』 서문(발췌)/ 윌리엄 워즈워스(발췌)_ 김석희/ 번역가 · 소설가
이 소네트에서 어느 정도 가치 있는 부분은 이탤릭체로 된 시행뿐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한 각운을 단 것과 '헛되이(fruitlessly)' 대신 '헛된(fruitless)"을 썼는데 이것은 결함이랄 수 있다. 이런 낱말을 쓴 것을 빼고는 이 시의 언어가 산문의 언어와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똑같이 분명하다.
위의 인용으로 보아 산문의 언어가 시에도 훌륭히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모든 좋은 시의 언어의 많은 부분이 산문의 언어와 어느 모로나 다를 수 없다는 것은 앞서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이 논의를 좀 더 몰고 가야겠다. 산문의 언어와 시의 언어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은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시와 그림 사이의 유사성을 특징지을 만큼 엄밀한 연관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시도 산문도 같은 기관으로 말하고, 같은 기관을 향해 말한다. 그것들이 들어 있는 몸뚱이는 동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그것들의 애정은 혈연관계이며 거의 동일하며 정도에 있어서도 당연히 다를 바가 없다. 시는 '천사가 흘리듯이'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시는 그 혈액이 산문의 그것과는 다른 천사의 '이코르(ichor.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혈관 속에 흐른다고 여겨진 불로불사의 영액靈液'이라고 뽐낼 수가 없다. 시건 산문이건 그 핏줄에는 같은 사람의 피가 돌고 있는 것이다. [···] (p. 시 127/ 론 127-128)
* 토머스 그레이(1716-1771, 55세): 영국의 시인, 인용한 소네트는 친구인 리처드 웨스트(1716-1742, 26세)의 죽음을 대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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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 2021-가을(49)호 <세계시론산책⑦> 에서
* 김석희/ 1952년 제주 출생, 번역가, 소설가, 서울대학교 불문과 졸업, 동대학원 국문학과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한때 창작과 번역을 병행했으나 2000년 이후에는 번역에만 종사하여, 영어 · 불어 · 일어를 넘나들면서 허먼 멜빌의『모비딕』, 헨리 소로의『월든』, 알렉상드르 뒤마의『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20권),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2004년 『시와경계』로 등단, 시집『내가 침묵이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