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

정재민_바둑 장기 투전 골패...시가들(발췌)/ 퇴공무일사 : 이규보

검지 정숙자 2020. 10. 16. 00:29

 

 

    退公無一事 퇴공무일사 

 

    이규보(李圭報 1163-1241, 73세)

 

 

  退公無一事 퇴청하여 아무 일 없으니 

  暑氣蒸人 찌는 듯한 더위가 사람을 괴롭히네

  吟久巾 오래 읊조리니 두건이 비스듬하고

  眠多簟印身 잠이 많아 몸에 대자리 자국 생겼다네

  棋閑遊毒手 바둑판이 한가로우니 독수가 늘고

  盡錮饞脣 술이 다 되니 입도 다물었네

  笑矣殘城守 우습도다 쇠잔한 성을 지키는 사람

  生涯老 생애에 늙은 몸 다시 가난일세

 

 

  * 블로그주 : 퇴공무일사/ 서기만증인/ 음구건기령/ 면다검인신/ 기한유독수/ 주진고참순/ 소의잔성수/ 생애노경빈

 

 

  ▶바둑 장기 투전 골패, 그 잡기의 세계를 엂은 시가들(발췌)_정재민/육군사관학교 교수 

  이규보가 계양부사로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이 무렵 그는 자신을 외직으로 쫓겨난 죄인이라고 인식했다. 큰 뜻을 품었으나 세상은 그 뜻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울적했을까. 게다가 날씨마저 무덥고 생활은 더없이 궁핍했다. 이 때문에 이규보는 자신이 머물던 계양을 '잔성殘城'이라 칭했다. 쇠잔한 성! 남루하고 궁벽한 고을이라는 뜻이다. 그런 속으로 밀려난 자신의 신세는 그야말로 안타까운 처지였다./ 가진 것이라곤 시간밖에 없는 상황! 그가 택한 소일거리는 시와 바둑과 술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고, 그마저 싫증이 나면 바둑을 두었다. 물론 혼자서 두는 1일 2역의 바둑이다. 홀로 공격하고 홀로 방어한다. 궁지에 몰리면 사활을 건 독수를 둔다. 애초부터 싸움의 상대도 없고 승패도 없는 게임이다. 긴장감은 이미 바닥을 쳤다. 하지만 이래선 게임이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여 독수 두기를 즐긴다. (p. 시 102/ 론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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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2020-가을호 <고전산책 -19> 에서

 * 정재민/ 1964년 경기 양평 출생, 육군사관학교 국어국문학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저서 『한국운명설화의 연구』『군대유머 그 유쾌한 웃음과 시선』『리더의 의사소통』『문예사조』『사관생도의 글쓰기』『문학의 이해』『불멸의 화랑』등, 현재 육군사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교수학습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