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익균_ 그래서 쓴다(발췌)/ 일요일 : 김소형

검지 정숙자 2020. 2. 12. 02:23



    일요일


    김소형



  일요일에 우리는 앉아서

  자본주의 시대를 배운다.


  이 시대에서 돈으로 생명과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문장을 읽을 때


  어린 친구가 묻는다.


  선생님, 영혼은 어떻게 팔아요?


  그는 이제 십 년을 살았으니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작년에 죽은 친구는 이 시간이면 성당에 갔었다.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좋은 곳에 있을 테지. 영혼은


  호리병에 훅 담아 팔아요?


  손 모양으로 진지하게 입김을 후후 불고는 꺄르륵 웃는 것이다.


  팔 수 있다면 코카콜라 병이어도 괜찮겠지. 이 말을 꺼내면 펩시는 안 되는지 친구는 물을 것이고 진열된 캔에 영혼을 얼마나 함유할지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나 이 시대에 나의 영혼을 누가 살까.


  우리 선생님이었대. 불쌍하다.


  그들이 조금씩 나누어 마실지, 아니면 배운대로 이런 걸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거야. 순순히 따를지 궁금한 시간을 지나 나의 어린 시절은 8 · 15콜라를 따고 있다.


  언제든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거야.


  이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언제 팔린 건지 모르면서 떠드는 일요일. 이 시대에서 아직 죽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잘도 

    -전문-



   ▶ 그래서 쓴다(발췌)_ 김익균/ 문학평론가  

  위의 시는 김소형의 시세계의 중핵인 '목소리'가 어떤 시대의 산물인지 자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일요일'은 자본주의적 인간이 '삶 노동'을 잠시 쉬는 공휴일이다. 물론 우리는 시의 첫 행 "일요일에 우리는 앉아서"에 "교회에"라는 말을 짐짓 끼워 넣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혹은 기성세대의 담론에서 자본주의적 노동을 쉬는 순간 즉 일요일에는 평일에 해왔던 자본주의적 삶을 부정하고 회개하라는 훈계가 주어진다. 이를테면 "돈으로 생명과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기성세대의 "문장"에는 상품 관계가 그대로 기입되어 있다.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비로소 영혼은 팔거나 팔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위에 서 있게 되기 때문이다. (……) 이 시의 마지막 연인 "언제 팔린 건지 모르면서 떠드는 일요일. 이 시대에서 아직 죽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잘 도"는 "돈으로 생명과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문장에 기입된 상품 관계의 논리를 좀  더 적나라하게 질타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반자본주의적인 목소리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영합하여 "잘도" 살아남는다는 역설을 통해 "이 시대에서 아직 죽어보지도 못"한 기성세대의 담론을 꾸짖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말은 이미 자신이 팔렸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으며, "이 시대에서" "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무지하다. 후안무치한 기성세대의  "목소리"에 맞서는 시적 주체 혹은 시인은 "8 · 15콜라를 따"먹고 자란 세대로 특정된다. 시적 주체는 정체성에 의해 조건 지어진 동시에 세대적 정체성 자체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소형 시인은 2010년대를 뜨겁게 달군 청년 담론의 주체로서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연구자는 한국사회의 세대 구조를 분석하면서 'IMF 세대'를 1978~88년생으로 범주화하여 1990년대 말 이후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와 이로 인해 극심해진 생존경쟁 속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무한이기주의에 경도된 세대로 규정하였다."(심광현, 「세대의 정치학과 한국현대사의 재해석」『문학과학』62. 2010). 이는 객관적 연구를 표방하면서 청년을 대상화하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노정한다.(장강명의 한 소설에는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사상에 났다"는 표현이 나온다.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년 18쪽) 이러한 기성세대의 대상화에 저항하는 청년들의 당사자 운동이 목하 현재진행형이다. (p. 시 190-091/ 론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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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1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김소형/ 201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ㅅㅜㅍ』

  * 김익균/ 문학평론가, 2010년 『시작』으로 등단, 저서 『근대 한국의 문학지리학』(공저) , 『서정주의 신라정신 또는 릴케 현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