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_ 시가 되찾아야 하는 것: 불온한 새로움(발췌)/ 황억두 : 우한량
<권두 에세이>
『계간 파란』 2019년 여름호 issue 프론티어
시가 되찾아야 하는 것: 불온한 새로움(발췌)
-씽씽과 우한량
장석원
씽씽의 음악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오로지 '음악(예술/시)'이 주어이자 목적어이다. 그들의 음악이 빚어내는 문형, 음악이라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를 상정하지 않는 음악. 이것도 음악(시)이고, 저것도 음악(시)이다. 모든 것 속에 음악(예술이 있다. 음악(예술에는 그 어떤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시)은 벽과 경계를 모른다. 음악(시)은 자유이고, 음악(예술은 무한이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움 그것이 되어야 한다. 모더니티와 전통의 회통을 목격한다. 근원적인 것 속에서 근본적인 혁신의 에너지를 채굴한다. 국악의 개조가 아니고, 락의 변신이 아니다. 씽씽은 새로운 괴물이다. 단독자이다. 해체하여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예술의 새로움이 어떻게 창조되는가를 증명해 주는, 사라지지 않는 현재가 되어, 씽씽은 우리 가슴속에서 맥동하고 있다.(p. 5-6.)
이제는 그 형에 대해서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내가 구미라는 작은 동네에서 한참 배달할 때 살던 옆집 조선족 형이었는데 원래 건달을 하다가 그만두고 숨어 지내며 과일을 파는 형이었지 그 형은 항상 내게 말했어 공부를 하라고 랩하지 말라고 그래서 난 그 형이 밉기도 했지만 같이 삼겹살 구워 먹고 점점 친해졌어 첨엔 인상이 험하고 북한 말투 무섭곤 했는데 볼수록 착하고 정이 가더라고 대머리까지도 / 그에겐 가족이 없어 그에겐 부인이 없어 그에겐 친구도 없어 그에겐 아무도 없어 / 그땐 근데 어려서 그 형이 나보고 방 안에 박혀서 램만 하면 우울증 온다고 해서 화가 나서 그 형에게 나가라고 했고 나는 누가 조언해 주는 게 싫었어 근데 씨발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조언을 해주는 사람 그 형밖에 없는 것 같았어 (중략) 예전에 살던 그 형님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고 다행히 1층이라 건물 옆쪽 창문으로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창문을 열자마자 널브러진 부탄가스들과 말없이 누워 있는 형 내가 형이 키우고 싶다 해서 맡긴 강아지까지 모두 창백하게 놀란 나머지 건물주에게 연락을 했고 그게 내가 본 형의 마지막 / 그 형은 부인이 없어 그 형은 친구가 없어 그형은 가족이 없어 조폭들 보복이 두려워 평생을 가명으로 살았어 / 수십 년을 외로이 지내다 간 형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작은 노래 선물 조선족이라고 멸시받으며 살았던 형을 좀 더 헤아렸었다면 이제야 깨닫게 되었어 나는 소중한 사람이 죽어야 그제야 소중함 느끼는 쓰레기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날 감싸 준 건 형이 첨이었어 이걸 녹음하면서도 형이 보고 싶어
- 우한량(힙합 아티스트),「황억두」부분
국악 연주가 없는, 익숙한 반주가 깔린 힙합 곡이다. 가사가 시와 경쟁한다. 발음을 뭉개면서 우한량이 토설하는 랩의 내용. 조선족 형 '황억두'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한 '나'의 회한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형에게는 부인도 친구도 가족도 없었다. 나도 그 형처럼 외로웠는데, 나는 랩만 했는데, 그 형이 비극적으로 죽은 후, 그 형이 세상에서 없어진 이후에야 "소중함 느끼는 쓰레기"라는 '나'의 발화. 결국, 우한량이 깨달은 것. "불안했던 날 감싸 준 건 형이 첨이었"다는 사실. 이제서야 "형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확인한 후, 우한량은 울지 않고 자신에게 소중했던 형 '황억두'를 위한 작품을 남긴다. 오늘, 우리의 시가 잃어버린 것이 여기에 있다. 소수자와 약자를 외면하고 좁디좁은 내면에 갇혀 있는 시. 쓸 것이 없다는 소리. 비슷비슷한 시들. 서정은 서정의 울타리 안에, 난해는 난해의 가두리 안에 유폐된 채 분별이 어려운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는 상황. '황억두들'을 시가 받아들여야 한다. 시는 우한량에게 패배한 것이다. (p.8-10.)
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찾아야 할 새로움, 그것, 고갈되었다 오판하고 포기하지 않았던가. 세대별로 비슷비슷한 시들이 넘친다. 신인들에게서 도플갱어를 목격했다고, 젊은 시인들에게 도전 의식이 없다는 말. 역시, 흘러넘친다. 틀렸다. 문단을 지워 버리고 시 바깥을 본다. 다른 곳에서 출현하고 있는 시를 바로 본다. 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에서, 우리가 외면했던 것에서 탄생한다. 용서와 사랑을 전도시켜 내가 추악한 과거를 망각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타락하는 동안, 새로운 예술은 시를 압도하면서, 빛나는 성취를 이룩해 냈다. 씽씽과 우한량이 시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가 돌아오고 있다./ 시는 불온해져야 한다. 다시 새로움을 모색해야 한다. 시는 전통을 탐구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것 속에서 새로운 현대성이 있을 것이다. 오로지 새로움뿐이다. 그것이 시의 숙명이다. (p.11-12.)
전위적前衛的인 문화가 불온하다고 할 때,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재즈, 음악, 비트족族, 그리고 60년대의 무수한 앤티예술들이다. 우리들은 재즈 음악이 소련에 도입된 초기에 얼마나 불온시 당했던가를 알고 있고, 추상미술에 대한 후루시초프의 유명한 발언을 알고 있다. 그리고 또한 암스트롱이나 베니 굿맨을 비롯한 전위적인 재즈맨들이 모던 재즈의 초창기에 자유국가라는 미국에서 얼마나 이단자 취급을 받고 구박을 받았는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즈의 전위적 불온성이 새로운 음악의 꿈의 추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예는 재즈에만 한한 것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베토벤이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세잔느가 그랬고, 고호가 그랬고, 키에르케고르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이젠하워가 해석하는 샤르트르가 그랬고, 에디슨이 그랬다.
-김수영,「'불온不穩'성에 대한 비과학적인 억측」
조선이 낳은 황병기의 후예 내가 누군지 기억을 해 지금 넌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두 귀로 전설을 보고 있네 조선이 낳은 황병기 후예 헤매고 뒹굴다 여까지 왔네 마지막 꽃들이 피고 나서 죽고 귀신이 되어도 나는 살아가네 혼들이 곧 업적의 무덤 대가리가 타들어 가는 창작의 관 속에 감각을 불태워 내 언어 다 새겨 묘비명에 세워 놓아 비석에 새벽녘 미명에
-우한량,「Chosvn」부분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듣지 말고 나아가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움을 위해 불타오르자. 시여, 스스로를 부정하라. 돌아보지 말고, 후회하지 말고, 현재를 뚫고 나가는, 돌아오지 않는 '아즈샤라'가 되어라. (p. 11-13.)
계간 파란 편집 주간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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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2019-여름호 <권두 에세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