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수심을 버티는 숨/ 이정희

검지 정숙자 2024. 11. 24. 01:06

 

    수심을 버티는 숨

 

     이정희

 

 

  강물이 마른 후에 보았다

  물속에 반쯤 잠긴 바위들은

  그 반쯤의 무게로 제자리를 버틴다

  줄다리기를 하는 양쪽 사람들

  있는 힘껏 줄을 당기지만

  발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고정한다

 

  버틴다, 몇 날을 버틴다

  파도의 깨문 입술이 일그러지고

  마지막 숨이 관통할 때까지 버틴다

  제자리는 저마다의 중심이며

  저쪽이 아닌 이쪽이라는 듯이

 

  버티는 힘은 무엇을 넘기거나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견디는 것이다

  미동도 없다는 말은 지극히 버티고 있다는 뜻

  

  소용돌이 견딘 수심

  아슬아슬 비켜 간 길목

 

  얼마나 버틸지

 

  거스를 수 없는 궤적이 덮쳐도 팽팽하게 조인다

  꿈은 살아가는 것들의 숨

 

  한순간도 포기를 포기한 적 없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평상시엔 나타나지 않고 "강물이 마른 후에 보"게 되는 자리다. 이것은 비단 "강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어떤 환경이 사라지거나 또는 어떤 환경이 닥쳐올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자리가 "제자리"였는지 아닌지가 판명된다. 그때 "물속에 반쯤 잠긴 바위들은/ 그 반쯤의 무게로 제자리를 버"텼다. 어떤 일로 인해 "제자리"를 이탈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발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고정"하며 "버틴다, 몇 날을 버틴다", 자기 자리로서의 "제자리"는 그냥 저절로 얻어지거나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이루어지고 지켜내는 것임을 보여준다. (p. 시 56-57/ 론 145-146) <이종섶/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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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하루치의 지구』에서/ 2024. 11. 8. <상상인> 펴냄

 * 이정희/ 경북 고령 출생, 2020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꽃의 그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