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터널을 지나는 동안/ 서연우

검지 정숙자 2024. 10. 2. 02:46

 

    터널을 지나는 동안

 

    서연우

 

 

  너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스물한 개의 터널을 세고 있었어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구멍을 뚫은

  산이 그렇게 깊은 줄 몰랐지

  터널을 통과하기 전에는

 

  어떤 터널은 어둑어둑

  빛을 몰고 들어가도 어둠이 달려나왔어

 

  나는 숨을 몰아쉬었어

  허풍처럼

  위험한 거라곤 전혀 없어

 

  너는 입술에 담쟁이넝쿨을 심었어

  마스크를 벗기 전에는 다들 몰랐어

  고양이처럼 오래 버티려

 

  뼈다귀탕 묵은지를 맛있게 먹었지

  더 세 보이는 언니가 됐어

  입술걸이에 코걸이까지는 견뎌내라고 했어

 

  귀밑에 있는 사마귀 점 하나 뽑으려는데

  한 달 뒤까지 예약이 다 차 있다잖아

 

  터널 속, 심플하게 빠져나간

  살과 피는 어디로 갔을까

 

  내 몸은 몇 개의 터널을 뚫을 수 있을까

     -전문(p. 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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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화집 『시골시인   Q』에서/ 2023. 7. 31. <걷는사람> 펴냄

  * 서연우/ 2012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