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_『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부분들, 여덟)/ 김정훈 옮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부분들, 여덟)
카를로 로벨리지음/ 이중원 감수/ 김정훈 옮김
* 1925년 여름, 스물세 살의 한 독일 청년이 바람이 많이 부는 북해의 외딴 섬, '성스러운 섬'이라는 뜻의 헬골란트(Helgoland) 섬에서 며칠 동안 불안한 고독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그는 모든 난해한 사실을 설명하고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인 '양자론'을 구축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 혁명이었을 겁니다. 청년의 이름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였죠. 이 책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시작됩니다. (p. 프롤로그 中/ p. 9)
* 16년 후 유럽은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미 저명한 과학자가 되었죠. 히틀러는 그에게 원자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들라는 임무를 줍니다. 하이젠베르크는 기차를 타고 독일군이 점령한 덴마크로 가서 코펜하겐의 옛 스승을 찾아갑니다. 노인과 청년은 함께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집니다. 훗날 하이젠베르크는 가공할 폭탄을 사용할 경우 뒤따르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러 보어에게 갔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그 말을 믿지는 않았죠.
얼마 후 영국 특공대가 보어의 동의하에 보어를 납치해 점령지 덴마크 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영국으로 이송된 보어는 처칠의 영접을 받은 후 미국으로 건너갔고, 양자역학을 이용해 원자를 조작하는 법을 배운 젊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그의 지식을 활용하게 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폐허가 되고 20만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죠.
오늘날 우리는 도시를 겨냥한 수만 개의 핵탄두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성을 잃으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청년 물리학'의 무시무시한 위력은 누가 봐도 분명하지요. (p. 31-32)
*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를 생생한 말로 표현했습니다.
"신은 정말 주사위 놀이를 하는가?"
아인슈타인은 비유적인 표현을 좋아했고, 무신론을 표방했음에도 '신'을 비유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의 말을 그저 글자 그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신'과 '자연'을 동의어로 썼던 스피노자(Spinoza)를 좋아했습니다. 따라서 '신은 정말 주사외 놀이를 하는가?'는 글자 그대로 '자연의 법칙은 정말 결정론적이지 않은가?'를 의미합니다.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논쟁이 있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은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p. 44)
* 양자론이라는 명칭은 '알갱이'를 뜻하는 '퀀타'라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양자 현상은 세계가 아주 작은 규모에서 입자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입자성은 에너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매우 일반적입니다. 제 연구 분야인 양자 중력 이론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 매우 작은 규모에서 입자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죠. 그러니까 공간의 경우에도 플랑크상수가(극히 작은) 기본적인 '공간의 양자'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p. 51)
* 이 이론을 구축한 사람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노벨상 연속 수상으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빛의 양자를 도입해 광전효과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22년에는 보어가 원자의 구조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죠. 1929년에는 드 브로이가 물질파의 개념으로 수상했습니다. 1932년에는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창시'로, 1933년에는 슈뢰딩거와 디랙이 원자 이론의 '새로운 발견'으로, 1945년에는 파울리가 이 이론에 대한 기술적 기여를 한 공로로, 1954년에는 보른이 확률의 역할을 이해한 공로로(사실 그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냈지만요) 수상하였습니다. 유일하게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파스칼 요르단(Pascutal Jordan)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와 보른과 요르단이 이 이론을 창시했다고(옳게) 주장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요르단은 나치 독일에 너무 많은 충성을 보였습니다. (p. 54-56)
* 카를로의 ψ('프사이' 영어, 그리스어로는 '프시'/ 압력 단위 기호: 블로거 참고)는 고양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시스템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세계들은 모두 똑같이 존재하고 똑같이 실재하며, 그 세계에는 나의 복사본이 무수히 존재하여 온갖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죠. 이것이 다세계 이론입니다. (p. 76)
* 양자역학이 탄생하던 1909년에서 1925년 사이에 이탈리아에서는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riandello)가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Uno, nessuno e centomila』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다양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실재의 파편화에 대한 이야기였죠.
큐비즘은 우리가 보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 너머, 세계의 실제 모습을 그리려는 일을 포기합니다. 이 이론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고양이나 광자가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죠. (p. 86-87/ p.110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인 어떤 것")
*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반대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보어는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말라"고 응수했습니다. 비유를 풀어 보면, 자연은 우리의 형이상학적 편견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 자연의 상상력은 우리보다 더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p.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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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 로벨리 지음 | 이중원 감수 | 김정훈 옮김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2023년 12. 1. 초판 1쇄 | 2023. 12. 15. 6쇄 발행 | (주)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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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 로벨리(지은이 1956~, 이탈리아 출생)/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 1981년 볼로냐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1986년 파도바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런 물리학 센터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연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Sette brevi lezioni di Fisica』『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La realta non e come ci appare』『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Et si le temps n'existait pas?』등이 있다. 2014년 이탈리아에서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 첫 출간된 이후 그의 책들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번역되어 13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과학책으로 유례없는 기록이다.
* 김정훈 옮긴이/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고전어와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죽음: 이토록 가볍고 이토록 먼』 『우리와 그들의 정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옮겼다.
* 이중원 감수/ 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과학철학과 기술철학이며, 과학기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를 다각도로 고찰하고 있다. 양자이론, 나노 기술, 로봇 공학. 인공지능 등 어려운 과학이론과 첨단기술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강연 · 언론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 ·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 과정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핬다. 한국과학철학회 회장과 한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학』(공저), 『인공지능의 윤리학』(공저), 『인공지능의 존재론』(공저), 『필로테크놀로지를 말한다』(공저), 『포스트휴먼과 융합』(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감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