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나리꽃 필 무렵/ 남길순

검지 정숙자 2024. 9. 25. 02:24

 

    나리꽃 필 무렵

 

     남길순

 

 

  풀이 미쳤다

 

  황소도 아니고

  수탉도 아닌

  풀이 미치다니

 

  마당 잔디에 뱀이 숨어들어

  긴 삽을 들고 엄마가 서성인다

  나도 무르게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채어

  엎어진다

 

  저게 사내지 계집애냐고,

 

  뱀 꼬리를 잡고

  풀밭에 내리치는 무당의 손을 본다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독한 담배를 피운다

  여기저기 미쳐 자빠진 풀이

  쓰러져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살이 오른 수탉은

  버찌를 주워 먹은 듯 부리와 혀가 까맣다

 

  때죽을 따 던지며 놀다

  삼드렁하게 돌로 찧는다

 

  물고기가 하얗게 배를 뒤집으며 떠오른다

 

  나만 모르는 소문이

  숲 군데군데

  고개를 쳐들고 피어올라 있다

    -전문(p.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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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화집 『시골시인   Q』에서/ 2023. 7. 31. <걷는사람> 펴냄

  * 남길순전남 순천 출생,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분홍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