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 (좌우화살표)/ 박정민
검지 정숙자
2024. 9. 14. 15:28
↔
박정민
냄새가 사라졌다, 타원의 무리를 몰고 모조리
알코올로 소독한 굴곡을 재구성하느라 36.5도 이상의 열기를 견디는 동안
입덧 바깥만 돌아다녔을 모든 익어 가는 것들의 냄새
먼저 냉장고를 열고 김치통을 열어 본다
그라인더 바닥에 깔린 원두 부스러기
하물며 변기 속 배설물도 냄새를 벗었다
커피와 보리차는 냄새 벗고 나서 서로 퉁치는 관계가 되고
새콤달콤한 향을 잃은 디퓨저는 의무를 벗었다
필통 속 볼펜들은 서로 엉킨다, 침묵을 고려 중이다
잉크 냄새 벗은 글자는 무게를 줄인 만큼 가벼워진다
입속 습관적 되새김질은 무미건조해지고
당신의 늙은 입냄새 나지 않는다
깔린 곳의 냄새, 내몰린 것의 냄새, 낮은 것의 냄새, 우울의 냄새
내게 나던 지독한 노화 냄새도 일시 정지다
전화벨은 생략되고 톡은 차단이다
너의 입술은 더 이상 발기하지 않고
내 입에서는 더 이상 똥 냄새 나지 않는다
-전문(p. 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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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박정민/ 1997년『문예사조』를 통해 등단, 시집『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