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구성, 비의 잔상을 위한/ 이선락

검지 정숙자 2024. 9. 14. 14:19

 

    구성, 비의 잔상을 위한

 

     이선락

 

 

  구겨진 종이 위에 비 내린다

  해진 물방울을 읽는다 낡은, 구성*?

 

  빨강, 고양이 등 뒤로 날 선 네모 기운다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뷰파인더 속 실루엣, 허벅지 사이 몇 방울의 비

 

  줄이 맞지 않는 문장으로 엽서를 쓴다

  주소가 없는, 끝내 되돌아온 이름 빗물에 번진다

  (반지하 쪽문에선 푸른 머리칼 냄새 컹컹거렸지)

 

  글씨들 들뜬 물방울 속 이름 몇 널브러지고

  접힌 모서리 숨은 그림, 속이 비치고

  (여자일까, 난간에 기대선 저 노랑)

 

  점이었을까? 콤마, 아니 느낌표?

  책이었다 몸이었다가 바람 지나가자 나무였다가, 검은

 

  강이 흐른다

  물속에 잠긴 그림자 위로 소나기

 

  실루엣 속의 여자 빠져나간다

  젖었던 속살 바랜다 희부연 사진 속, 해진 칼 하나 돋아나고

 

  장마일까, 물웅덩이에 뿌리를 내리는 

 

  비 긋자 우산 속에 구성, 되는 비구상의

     -전문(p. 88-89)

 

     * 몬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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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이선락/ 2020년『울산문학』 & 『동리목월 &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