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삽화가 된 휴지통*/ 김뱅상

검지 정숙자 2024. 9. 12. 20:44

 

    삽화가 된 휴지통*

 

     김뱅상

 

 

  머그 컵?

 

  휴지통 앞에서 말이 꺾인다

 

  브도블록 한 장쯤, 기울어진 머그잔에 스트로 꽂아 넣자

  뭉그러지는 속엣말 몇 모금

 

  와글시끌, 끌려오는 발바닥 조각들

  가로세로들, 콜라주

 

  나 왜 휴지통 앞에 서 있지?

 

        *

 

  얼굴 따윈 필요 없어, 뒤통수를 반쯤 기울여 보면 알아

  숨은 것들이란 가장자리 쪽으로 기울거든

 

  머그 컵을 뒤집는다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소음 엎어지고

  소프라노, 어제 죽은 여배우의 대사 비스듬히 선다

 

  공중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너와 난 어깨를 들썩였잖아, 어슷 햇살이 잘려 나가는 찰나였어

 

  라운드 미드나잇 흐르고

  피카소 달리 에른스트 마그리트, 지나가고

  머릿속에 엉겨드는 토끼 여우, 이건 뭐! 짐승도 아니고······

 

  비스듬한 것들은 늘 새롭지

  저 휴지통 좀 봐, 기울어 있잖아 오늘은 취하지도 않았어

 

          *

 

  미술관 앞, 제 발로 걸어 나간 발바닥들 자꾸만 말을 걸어오고

  난 머그 컵이나 툭툭, 기울이며

     -전문(p. 82-83)

 

   * 르네 마르리트, 「삽화가 된 젊음」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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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김뱅상/ 2017년『사이펀』으로 등단, 시집『누군가 먹고 싶은 오후『어느 세계에 당도할 뭇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