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발자국이 흐느끼던 날/ 박장희

검지 정숙자 2024. 9. 11. 02:18

 

    발자국이 흐느끼던 날

 

     박장희

 

 

  부리를 가슴에 묻고 외다리로 밤을 지새운 난 짓무른 눈으로 사소한 불일치에도 생각을 덧질한다 가벼워진 뼛속 공중에 뻗은 나뭇가지, 어둠의 모서리 긴꼬리에 회색빛 낮은음자리표로 앉는다 적막은 깃털만큼 겹겹이다

 

  나의 부리와 꽁지는 점점 여위어 녹을 줄 모르는 얼음 위에 싸늘히 붙고, 침믁으로 깊어지던 악보는 높은음 쓸쓸한 박자로 깃털마다 스며들고, 훤한 햇살 아래지만 온통 검회색이다 적막은 찢을 수도 칼로 도려낼 수도 불로 녹일 수도 없는, 날개가 있어도 비상할 수 없고 허공이 있어도 자유가 없다

 

  핑크 난 풍선 찢어지고 무너져 내린다 목 뜯기고 뽑힌 깃털 푸르죽죽 울긋불긋, 목 안에서 모래바람 회오리친다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어떤 풍경도 바라볼 수 없고 그 무엇도 저장할 수도 없는, 동백꽃을 찾아 멀리 깃을 펼칠 수도······ 목소리 가슴 꼬리 할 것 없이 볼륨이란 볼륨은 다 흰색 검은색으로 주저앉는다

 

  깊고 깊은 두 동공 생략이 안 되고······ 찬바람이 바람벽을 세우는 벌거벗은 보라색 적막과 서러운 검회색, 어떤 길을 가야 목적지에 닿을까 나뭇가지가 바람을 쓰다듬는다 그 동공 어느새 이음새 노새 닷새 짜임새 틈새 리듬을 탄다

    -전문(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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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박장희/ 1999년『문예사조』로 & 2017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폭포에는 신화가 있네』『황금주전자』『그림자 당신』『파도는 언제 녹스는가』, 산문집『디시페이트와 서푼 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