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육식 습관/ 추성은

검지 정숙자 2024. 9. 11. 01:51

 

    육식 습관

 

    추성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천적은 홍학

  시를 쓰는 것과 제목을 쓰는 건 아주 다른 일

 

  마음은 몸을 가지고, 손발의 물성을 가지고 객원으로 찾아오는구나

 

  먼지, 태초의 마음은 먼지였을까, 먼지 이전의 모래. 모래자갈은 한때 돌이었고 돌은 한때 화석이었다고, 먼 옛적 공룡에게도 깃털이 있었다는데, 화석은 발견되었다는데, 공룡의 심장은 인간의 심장을 닮았다는 것도, 홍학에게 쪼아 먹히는 공룡 심장, 그런 거 전부 당신이 알려 준 마음이었지

 

  당신은 내가 시를 쓰기 전

  제목부터 짓는 게 나쁘다고

  고치라고 했다

 

  가벽과 비계를 세우고 집을 짓는 게 아닌

  문부터 세우는 사람

  그게 나라고

 

  한 무리의 홍학이 지나간 곳에는

  공룡의 뼈와 깃털만 남는다

 

  전시된 모형 공룡 화석의 갈빗대 사이를

  문도 없는데, 안팎으로 들락거리는 당신은

  이 거대한 뼈에 

  피와 살이 어떤 구조로 붙어 있었는지 모르면서

 

  공룡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떄 마침 서울 한복판에 핵이 떨어진다면

  낙진이 지나 훗날 철골과 가벽만

  남아 있는 건물을 보며

 

  미래의 당신은

  창문과 문 드나드는 사람 얼굴과

  지금의 빌딩 모양을

  알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그날 저녁에 먹을 쌀을 안치며

  공룡을 먹어 치운 홍학이 물에서 깃털을 씻으면

  그 물에서부터 솟구치는 커다란 심장을 떠올리게 되는데

 

  백악기부터 지금까지 뛰는 심장

  문을 여닫는 당신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살았을

  나의 천적을 생각하게 한다

      -전문(p.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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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poem> 에서

  * 추성은/ 시인,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