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 편지/ 이혜미
마카롱 편지
이혜미
기억해? 우린 같은 옷을 입고 캠퍼스를 걸었지 서로에게 얽혀 있다는 약속의 무늬로, 같은 종족이 되어 비슷한 그늘을 얻으려 했어 모르는 표정을 걸칠 때마다 곤란해진 상처들이 쌓여 갔지만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한가득 빌려 온 도서관에서 의미의 미로를 헤매다녔지 개기월식이 시작된 오늘을 우주적 마카롱의 날이라고 불렀어 서로의 각도를 겹쳐 어둠을 태어나게 하면 멀리서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지 미루어 둔 과제처럼 남겨진 그늘을 만져 보다 겹쳐지며 하나가 되는 시간을 떠올렸으니까
심장이 자석이라면 떠도는 행성들을 끌어모아 짤주머니에 넣고 외로움의 목록에 익숙한 이름들을 모아 두겠지 투명에 저당 잡힌 무수한 뒷면을 감추고 별 모양의 반죽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밖에
그거 알아? 영혼과 영원은 반대말이래 심장에 달라붙은 빛의 조각을 만지며 하나이자 둘인 것들을 생각해 맞붙은 손의 하나될 수 없음과 마음의 무한될 수 없음 나의 너 될 수 없음 그런 것들을 그럼에도 기어이
같은 색을 끝내지 말자 하나의 슬픔을 다 이해하기에 이 은하는 너무 좁으니 얇은 비닐 속 꼬끄가 부서질 때 우주의 안쪽에서 묻어 나오는 처음이 있어 과거적 미래인 오늘의 편지처럼 끌어안은 품 안에서 달콤하게 뭉개지는 비밀처럼
-전문(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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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poem> 에서
* 이혜미/ 시인,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빛의 자격을 얻어』『흉터 쿠키』, 산문집『식탁 위의 고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