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마카롱 편지/ 이혜미

검지 정숙자 2024. 9. 10. 20:29

 

    마카롱 편지

 

    이혜미

 

 

  기억해? 우린 같은 옷을 입고 캠퍼스를 걸었지 서로에게 얽혀 있다는 약속의 무늬로, 같은 종족이 되어 비슷한 그늘을 얻으려 했어 모르는 표정을 걸칠 때마다 곤란해진 상처들이 쌓여 갔지만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한가득 빌려 온 도서관에서 의미의 미로를 헤매다녔지 개기월식이 시작된 오늘을 우주적 마카롱의 날이라고 불렀어 서로의 각도를 겹쳐 어둠을 태어나게 하면 멀리서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았지 미루어 둔 과제처럼 남겨진 그늘을 만져 보다 겹쳐지며 하나가 되는 시간을 떠올렸으니까

 

  심장이 자석이라면 떠도는 행성들을 끌어모아 짤주머니에 넣고 외로움의 목록에 익숙한 이름들을 모아 두겠지 투명에 저당 잡힌 무수한 뒷면을 감추고 별 모양의 반죽으로 서로를 기억할 수밖에

 

  그거 알아? 영혼과 영원은 반대말이래 심장에 달라붙은 빛의 조각을 만지며 하나이자 둘인 것들을 생각해 맞붙은 손의 하나될 수 없음과 마음의 무한될 수 없음 나의 너 될 수 없음 그런 것들을 그럼에도 기어이

 

  같은 색을 끝내지 말자 하나의 슬픔을 다 이해하기에 이 은하는 너무 좁으니 얇은 비닐 속 꼬끄가 부서질 때 우주의 안쪽에서 묻어 나오는 처음이 있어 과거적 미래인 오늘의 편지처럼 끌어안은 품 안에서 달콤하게 뭉개지는 비밀처럼

    -전문(p.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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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poem> 에서

  * 이혜미/ 시인,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빛의 자격을 얻어『흉터 쿠키』, 산문집『식탁 위의 고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