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일단 멈춤/ 박순례

검지 정숙자 2024. 9. 10. 00:35

 

    일단 멈춤

 

     박순례

 

 

  삼십 년 된 장롱을 버렸다

  나를 버렸다

  이십 년 된 장식장을 버렸다

  꿈을 버렸다

 

  왕골 돗자리를 버렸다

  추억을 버렸다

  매 묵화 병풍을 버렸다

  과거를 버렸다

 

  접시를 버리려다 멈춘다

  이유식을 먹이던 접시

  버리려던 딸아이들이 빙글 돈다

 

  접시를 돌린다

  꽃을 따라다니며 엄마 놀이를 하고

  애기 오리가 점점 자라

  삼지창을 든 오빠와 뒤뚱거리던 오리 궁둥이들

  멜라닌 접시에서 아이들 논다

 

  대낮인데 하늘엔 별이 뜨고 달이 뜨고

  달콤하게 꿈을 키우던 아이들

  접시에서 지금도 뛰어논다

 

  햇살이 접시 안에 듬뿍 안긴다

     -전문(p.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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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박순례/ 2016년『여기』를 통해 등단, 시집『침묵이 풍경이 되는 시간』『고양이 소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