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2월 29일/ 이병일

검지 정숙자 2024. 9. 2. 02:29

 

    2월 29일

 

    이병일

 

 

  그레고리력은 4년에 한번 2월 29일을 만든다

  365일 5시간 48분 46초,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인데

  왜 빛은 어스레하면서 밝은 얼룩이 될까

  지구의 사고방식은 반복이다

  반복만이 빛이 없는 곳에도 숨을 내어준다

 

  2월은 양분 뺏겨 쭈그러든 씨감자에게 숨을 숱인다

  짓물러 썩어 가는데도 숨 막히는 뿔을 세우게 한다

  밥알을 흘리면서 도시락을 까먹는 사람이

  흘린 밥알을 몰래 주워 먹는 오후가 있듯

  2윌 29일은 쥐띠 용띠 원숭이띠에 들어앉는다

  들어앉는다는 것이 기쁜다

 

  오늘은 내가 죽어 달이 없는 날이다

  그 어떤 것도 해코지를 하지 못할 것만 같다

 

  달도 하필 이 순간에 죽고

  나 없는 세상에서 2월 29일이 돌아왔다

  울타리 넘어 돌아오지 않던 흑염소도 돌아왔다 

 

  텅 빈 집은 예전 그대로,

  죽은 옻나무는 서서 뚜렷하게 한 번 더 죽을까

  어짜다가 봄볕을 타는 것은 허술하게도 죽을까

 

  죽는 것도 반복, 나는 그 돌아옴을 불시라고 부른다

 

  무덤에서 빠져나와 짝짓기를 하는 것들

  몸이 되는 것만 살아남고 신열이 된 것은 죽는다

  오늘은 2월 29일,

  악쓰며 떠난 것은 악쓰며 온다

  아른아른 빛으로 올라간다

      -전문(p.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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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4-여름(90호)호 <시심전심詩心傳心/ 근작시> 에서

  * 이병일/ 2007년『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옆구리의 발견』『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나무는 나무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