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연두색 띠/ 최금녀

검지 정숙자 2024. 8. 31. 15:06

 

    연두색 띠

 

    최금녀

 

 

  내 첫 시집은

  뻐꾹새 우는 초여름

  호박밭에서 호박잎 이슬을 품는 연희동 언덕

  한복 할아버지가 따주신 애호박 색깔

  연두색 띠를 둘렀다

 

  애호박 썰고 된장을 넣으면

  이슬 보글거리고 햇볕 우러나

  제법 괜찮은 맛이라고

  오래 다닌 방앗간에 하나

  채소 가게에 하나

  미장원에 하나

  지물포에 하나

  동창회 총무에게 하나

 

  연두색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호박잎에 검은 점이 박히는 가을

  폐업이라고 써 붙인 문을 열고

  방앗간 그 여자

  이슬 마르지 않은 연두색을 받던 그 손으로

  내민 검은 비닐봉지

  우리 폐업했어요

 

  카페로 바뀐

  방앗간을 지날 때마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중얼거리는 고춧가루의 소리를 듣는다

     연두색이 참 예뻤어요  

    -전문(p. 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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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년간 『미당문학』 2024-하반기(18)호 <신작시> 에서

  * 최금녀/ 1998년『문예운동』 으로 등단, 시집『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시선집『한 줄, 혹은 두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