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강문출_다시 읽고 싶은 시/ 먼 곳 : 문태준

검지 정숙자 2024. 8. 29. 13:29

 

    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웅큼, 한 웅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과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전문(p. 172)

 

  ♣ 문태준의 시 「먼 곳」은 마지막 이별에 대한 애달픈 헤아림이다. 모든 사람들이 갔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그곳.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부존재의 존재인 저 세상을 시인은 '먼 곳'이라 불렀다. 그의 구도자적 글쓰기는 종종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내 눈을 흔들리게 한다. (강문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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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다시 읽고 싶은 시>에서 

 *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곳』『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아침은 생각한다』 등

 * 강문출/ 부산 기장 출생, 2011년『시사사』로 등단, 시집『타래가 놀고 있다』『낮은 무게중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