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수평기 외 1편/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4. 8. 16. 01:04

 

    수평기 외 1편

 

     길상호

 

 

  수평선이 기울어졌다

  아버지는 물방울처럼 누워 계시고

  바다는 늘 중심이 맞지 않았다

 

  무거운 노래만이 그 방에 가득 찼다

  벽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액자 속의 사진이 삐딱,

  바로 세우려 하면 할수록 더 옆으로 누웠다

 

  한파에 몰린 아침이 도망쳐 왔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 마당을 채웠다

 

  수평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공기 방울이 찬 건 아닌지

  자주 머리가 아팠다

 

  눈을 이고서

  담장이 한쪽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골똘히 강구책을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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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구름

 

 

  책을 펼쳐 놓고 눈이 가지 않는다

 

  등에 줄무늬가 또렷했던 구름

  맥없이 풀려 사라지고

 

  저녁 햇볕이 소리 없이 돌아와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책장 넘기는 소리

  꿈뻑끔뻑 졸다가

  손등에 머리를 내려놓곤 하던 고양이

 

  우리 착한 산문이는 어디 갔을까

 

  심박측정기가 멈춘 그날처럼

  이제 책은 여백만 이어 놓는다

      -전문(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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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왔다갔다 두 개의』에서/ 2024. 7. 22. <시인의일요일> 펴냄

길상호/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등, 산문집『겨울 가고 나면 따뜻한 고양이』등, 김종삼문학상 · 천상병시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