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원_우리시 다시 읽기(전문)/ 오랑캐꽃 : 이용악
오 랑 캐 꽃
이용악(1914~1971, 57세)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흠에 살았다는 우리
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
으니 어찌보면 너의 뒤ㅅ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
랑캐의 뒤ㅅ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안악도 우두머리도 돌볼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처 드러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혀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 백년이 뒤를 니어 흘러 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방울 받지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몰으는 오랑캐꽃
두 팔로 해ㅅ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보렴 오랑캐꽃
◈ 「오랑캐꽃」은 1939년 9월 『인문평론』에 발표되었으며, 1947년 발행된 시집 『오랑캐꽃』의 맨 앞자리에 실려 있다. 『인문평론』 발표 당시에 시의 말미에 있던 '오랑캐꽃'의 유래담이 시집에서는 앞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고구려 장군님'이 '고려 장군님'으로 바뀌고 일부 자구가 달라졌다.
유래담과 이 시의 각 연은 각각 서술 양상과 대상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더욱이 1연과 3연에서 보이는 화자의 태도는 서로 모순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이 시는 화자가 오랑캐 또는 오랑캐꽃에 대하여 일정한 태도를 견지하지 못하여, 하나의 시적 형식을 완결하는 데 실패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를 이해하는 관건은 그 어긋남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랑캐꽃'의 유래담은 민간어원설로 명명의 주체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다. 우리의 조상들 중 어떤 한 사람이 오랑캐와 오랑캐꽃의 형태상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며,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거쳐 그 꽃의 이름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어찌보면"은 "오랑캐꽃이 왜 오랑캐꽃일까"라는 의문을 해결하려는 각성의 상태이고 "너의 뒤ㅅ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인 오랑캐의 뒤ㅅ머리와도 같은 까닭"은 그 의문이 해소되는 일종의 발견이다. 이러한 각성과 발견은 오랜 기간 반복되어 하나의 정형으로 굳어졌을 것이며, 화자도 이러한 각성과 발견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1연은 오랑캐와 우리 조상들과의 싸움 장면을 간접인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 '고려 장군님'은 나라와 민족이라는 배경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제도와 관습 속에 존재한다. 반면 오랑캐는 계통도 질서도 없다. 한 번의 패배로 '가랑잎'과 같이 사라지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의 싸움은 역사적 지평 위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지만, 오랑캐에게는 한 개인의 생존이 걸린 일회적인 사건이다.
2연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단지 과거와 현재를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논리와 개인의 논리, 관습의 영역과 자각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3연은 화자의 내적 독백으로 전개된다. 1~3행은 오랑캐꽃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한 화자의 발견이다. '어찌 보면' 그렇고 또 어찌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형태상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오랑캐꽃이라는 명명에 대한 거부이다. 즉 오랑캐꽃을 오랑캐꽃이라는 이름 뒤에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발견의 시선은 '오랑캐'에도 옮겨갈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은 화자에게 어떤 결단과 희생을 촉구한다. "두 팔로 해빛을 막아줄께"는 화자의 각성과 이에 따른 결단과 희생을 그러내는 자체이다.
이 시에 나타난 행위의 주체들은 그 친연성에 의해 순서대로 나열하면 '우리의 머언 조상(고려 장군님) - 나(화자) - 오랑캐꽃 - 오랑캐'가 될 것이다. 1연에서는 '고려 장군님'과 '오랑캐'의 관계가 대립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3연에서는 '나'와 '오랑캐꽃' 사이의 동화가 나타난다. 여기에서의 '나'는 유래담에서 볼 수 있듯이 관습과 사고 방식을 물려받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존재이다. 즉 '우리의 머언 조상(고려 장군님)'은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전개 과정은 '나(고려 장군님)'가 새로운 나(오랑캐꽃, 오랑캐)'로 갱신하는 과정이다. 약자의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되는 것이다. 즉 자신 속에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 결단과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두 팔로 해ㅅ빛을 막아줄께"는 그 결단과 희생의 순간을 드러내며,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보렴"은 그 결단과 희생에 따른 고통스러움을 이미 자신과 동화된 오랑캐꽃에 투사한 것이다.
'나(고려 장군님)'가 새로운 '나(오랑캐꽃, 오랑캐)'로 갱신하는 과정은 일상적 관습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갱신은 극적이 순간을 요구한다. 따라서 1연과 3연 사이에 단절과 비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절과 비약을 통해 주체의 각성과 갱신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p. 6-8)
* 블로그 註 1: 사진 -「오랑캐꽃」 원본 활자, 『오랑캐꽃』 초판 앞/뒤 표지, 이용악(인물사진)은 책에서 감상 要
* 블로그 註 2: 위 「오랑캐꽃」의 맞춤법/띄어쓰기는 원본에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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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3-여름(67)호 <우리시 다시 읽기>에서
* 박순원/ 충북 청주 출생, 2005년『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 시집『아무나 사랑하지 않겠다』『주먹이 운다』『그런데, 그런데』『에르고스테롤』『흰 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