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 그리운 나의 신발들/ 신경림
< 故 신경림 시인 추모>
그리운 나의 신발들
신경림(1936-2024, 88세)
50킬로도 채 안 되는 왜소한 체구를 싣고
꽤나 돌아다녔다, 나의 신발들.
낯선 곳 낯익은 곳, 자갈길 진흙길 가리지 않고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하면서도 그것들이 닳고 해지면 나는 주저 않고
쓰레기 봉지에 담아 내다버렸다. 그 덕에
세상사는 문리를 터득했다 고마워하면서.
이제 와서 내다버린 그 신발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세상사는 문리를 터득한 것은 내가 아니고 그
신발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신발들에 실려 다니기 이전보다
지금 나는 세상이 온통 더 아득하기만 하니까.
그래서 폐기물 처리장을 찾아가 어정거리는 것인데,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내 헌 신발들과 함께
버려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사는 문리를 터득하고자 나섰던 꿈과 더불어!
-전문, (『시사사』2004. 3~4월호)
■ 신경림 시인이 2024년 5월 22일 오전 8시 17분께 타계했다. 향년 88세. 1936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여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의 작품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시집 『농무』『새재』『가난한 사랑노래』『길』『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낙타』『사진관집 이층』등이 있으며,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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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6월(414)호 <권두>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