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쇠비름 외 1편/ 윤옥란

검지 정숙자 2024. 8. 4. 16:49

 

    쇠비름 외 1편

 

     윤옥란

 

 

  앞마당에 터를 잡은 쇠비름

  오가는 발에 밟혀 꺾인 허리가 다시 일어섰다

 

  어느 해 여름

  손수레에 올챙이묵을 싣고 가던 어머니

  트럭이 치고 갔다

 

  숟가락이며 그릇들은 논바닥에 나가떨어졌고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트럭의 육중한 바퀴에

  살과 뼈와 내장은 밖으로 튀어나왔다

  산소마스크를 낀 어머니

  피 묻은 손바닥에 짓뭉개진 쇠비름을 꼭 쥐고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중심만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지 살아야 한다는

  힘들어도 참고 살고 봐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쇠비름이 누렇게 물들기 전 다시 일어나셨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땡볕 더위에도

  고개를 높이 쳐들고 노란 꽃을 피우는

 

  뜰 앞 쇠비름

  잠언처럼 읽힌다

    -전문(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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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격

 

 

  요양원에서 제비처럼 받아먹던 입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하얀 시트에 덮인 할머니를 보고

  소나기 퍼붓듯 대성통곡하는 손자 손녀들의 울음소리

 

  능선과 계곡을 굽이굽이 적시는 물줄기 같은

  큰며느리의 떡국 떡떡국 떡국 한 맺힌 울음소리

 

  백 미터 뛴 듯 달려와

  숨 가쁘게 울어대는 시집간 딸들의 울음소리

 

  코를 풀다가도 전화를 받다가도

  다시 우는 아들의 울음소리

 

  슬픈 악곡처럼

  울음소리로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병실

 

  침대마다 반쯤 귀가 열려 있다

  팔순 노인이 자신의 죽음을 밀어내며 곡소리를 낸다

 

  흘러내린 눈물이

  귓불을 적시고 배갯잇을 적신다

 

  소리를 담아두던 한쪽 귀를 베개맡에 내려놓고 

  국화꽃 만발한 꽃길을 따라가는 말순 할머니

 

  저, 큰 검은 눈동자

  빛과 소리를 다 담아간다

     -전문(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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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에서/ 2024. 7. 25. <상상인> 펴냄

윤옥란/ 강원 홍천 출생, 2018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어떤 날은 말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