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상생/ 박현솔
검지 정숙자
2024. 7. 13. 15:07
상생
박현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나이 든 선생님들이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땅을 일구고
돌을 가려내서 지지대를 세우고
모종을 심고 흙을 덮은 후 물을 주는
모든 과정들이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아이들은 흙의 비밀을 더 알고 싶은지
집중해서 듣고 또 만져보기도 한다
그때 갑자기 한 선생님이 징을 세게 두드리며
선창을 하고 아이들이 입을 모아 함께 외친다
벌레들아, 약을 뿌릴 거니까 얼른 피해라
벌레들아, 약을 뿌릴 거니까 얼른 피해라
시간이 없으니까 그만 앞에서 내려와라
징 소리와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동네 사람들과 개들이 함께 구경 나와서
그 순간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데
한가롭게 잎사귀에 붙어서 단물을 빨던
벌레들이 깜짝 놀라서 허둥대다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나뒹구는 것이었다
그림자도 챙기지 못한 채 내빼는 것이었다
-전문(p.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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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이 계절의 시 1> 에서
* 박현솔/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 2001년『현대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달의 영토』『해바라기 신화』『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외, 시론집『초월적 세계인식의 전망과 이데아』『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