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김미연_소년문사로 시작한 조숙한 시인의···(전문)/ 서시, 산경표* 공부 : 이성부

검지 정숙자 2024. 6. 26. 02:35

 

 

      서시,

      산경표* 공부

 

      이성(1942-2012, 70세)

  

 

  물 흐르고 산 흐르고 사람 흘러

  지금 어쩐지 새로 만나는 설레임 가득하구나

  물이 낮은 데로만 흘러서

  개울과 내와 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듯이

  산은 높은 데로 흘러서

  더 높은 산줄기를 만나 백두로 들어간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산은 위로 치솟는다

  흘러가는 것들 그냥 아무 곳으로나 흐르는 것

  아님을 내 비로소 알겠구나!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들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소리 솔바람소리 같은 것들

  사라져버리는 것들 그저 보인다

     -전문-

 

    * 산경표山經表: 영조 때 학자 신경준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산의 족보격인 지리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중심축을 이루는 산줄기를 지리학적으로 기술했다.

 

  소년문사로 시작한 조숙한 시인의 노동과 선지적 자각, 그리고 역사 읽기(발췌)_김미연/ 문학평론가

  이성부(1942-2012, 70세)는 광주에서 출생, 고교생 때부터 문사로 활약했다. 광주고등하교 시절에 광주학생문학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1960년 고3 때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전국 규모의 학생문예작품 현상모집에 여러 차례 당선되어 학생 문사로 이름을 새겼다. 1960년 19세에 대학에 진학(경희대)하자마자 『현대문학』에 「소모의 밤」(김현승 추천)으로 1회 추천이 되고 그 다음 해 2, 3회 추천을 이어서 받아 주변을 놀라게 했다.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바람」이 당선되고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당선되었다. 제24회 경희문학상, 제18회 공초문학상, 일간스포츠 부국장, 일간스포츠 문화부 부장을 기내기도 한 참여시인이다. 사회반영적 주제를 다루어 참여문학 계열의 작가로 분류되나,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놓지 않는 시인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일찍이 「우리들의 糧食」으로 산문시의 새로운 영역을 확보한 이성부 시인이 유신과 군부독재 시대를 거쳐 오며 토해낸 시의 열정과 등산을 통해 얻어낸 정신의 새 자유와 깨달음을 시를 통해 확인하였다. 대표 시로는 「벼」와 「봄」이 있다.

 

     *

  '80년 광주'를 체험한 후 시인은 절망과 죄의식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으로 방황하다가 시인에게 신은 구원과 자유의 길을 내주었다. 이처럼 산에 빠져들게 한 배경에는 '80년 광주' 체험이 있었다. 시인은 현실적, 문학적 고향인 광주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한없이 절망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으로 현실도피와 자기학대로 시작한 산행이 차츰 구원과 자유를 향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산은 시를 버리고 산행에 몰입했던 그에게 다시 시를 쓰게 만들었다. (p. 시 155-156/ 론 140-141 · 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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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여름(94)호 <현대시인 열전/ 이성부 시세계> 에서

   * 김미연/ 2010년『시문학』으로 시,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 ,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