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숭원_영성(靈性)의 시인 김남조(발췌)/ 순교 : 김남조

검지 정숙자 2024. 6. 24. 20:00

 

     순교

 

     김남조(1927-2023, 96세)

 

 

  예수님께서

  순교현장의 순교자들을 보시다가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를 모른다고 해라

  고통을 못 참겠다고 해라

  살고 싶다고 해라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련다고 전해라

     -전문(『충만한 사랑』)

 

  영성靈性의 시인 김남조(발췌)_이숭원/ 문학평론가

  2023년 10월 10일 만 96년간 지켜온 지상의 손을 거두었다. 1950년 처음 시를 발표한 때로부터 73년의 시력이 쌓이고 1953년 첫 시집을 발간한 이후 만 70년 동안 19권의 개인 시집을 문학사의 기록에 남긴 기념비적 생애였다. 『문학사상』 추모 시인론에서 "이로써 한국문학은 시문학의 장엄한 도서관 하나를 잃었다. 그의 삶의 이력은 한국 현대 시사 그 자체였다."라고 나는 썼다. 이렇게 해서 인간 세상에서 그의 문학 여행은 종결되었다.

 

        *

  이(위) 작품 안에는 순교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기독교 섭리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의 시어 하나하나는 깊은 묵상의 파동으로 울린다. 예수님께서 순교자들을 보시다가 울음을 터뜨리셨다는 것은 물론 상상의 장면이다. 역사에 순교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신앙만 부정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람을 자신의 영육보다 사랑하신 예수께서 그들을 그냥 두실 리 없다. 그 자리에 예수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나를 부정하라고 진심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도 포용한 분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모두 고통의 길을 걸어 순교의 자리에 올랐다. 그것은 예수가 원한 길은 아니었다. 이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진수를 이해하는 것이다. 영적인 신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예수는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 대속代贖의 성혈聖血을 남기신 분이다. 그런 그가 자신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받는 일을 그냥 보셨을 리가 없다. 모든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는 예수가 하셨을 말을 시인이 글로 남겼다. "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련다고 전해라" 이 말은 어떤 성직자도 일찍이 발설한 적이 없는 말이다.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기독교 신앙의 구조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혼의 구원을 전심으로 밀고 나갈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영혼과 육체가 영적 에너지로 충만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은 기독교의 본질을 극명히 압축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바쳐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다.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가는 길을 일러준 분이 예수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구세주가 예수다. 그 이상, 그 이하, 그 외의 다른 무엇은 없다. 기독교의 진수를 이처럼 간명하게 짧은 시로 표현한 작품은 별로 없다. (p. 시 128/ 론 121 ·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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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4-여름(94)호 <김남조 시인 추모 특집/ 작품론> 에서

   * 이숭원李崇源/ 1986년 『한국문학』으 로 등단, 저서『백석 시, 백 편』『시 읽는 마음』『탐미의 윤리』『김종삼의 시를 찾아서』『미당과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