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광야/ 김남조

검지 정숙자 2024. 5. 16. 02:59

<권두시>

 

    광야

 

    김남조(1927-2023, 96세)

 

 

  오늘 이미 저물녘이니

  나의 삶 지극민망하다

  시를 이루고저 했으되

  뜻과 말이 한 가지로 남루이었을 뿐

  생각느니 너무 오래

  광야에 가보지 못하였다

 

  그곳은 키 큰 바람들이

  세월없이 기다려 있다가

  함께 말없이 오래오래

  지평을 바라보아 주는 곳

  그러자니 어른이 좀 되어 돌아오는 곳

 

  삶의 가열한 반의 얼굴,

  혼이 굴종당하려 하면

  생명을 내던지고 일어설 계율을

  이 시대 동서남북

  어느 스승이 일깨워 주는가

  어느덧 나는 사랑을 말하지도 않고

  번뇌하는 두통과도 헤어져

  

  반수면의 수렁에서

  안일 나태한 나날이다가

  절대의 절대적 위급이라는

  음습한 독백에 부대끼노니

  

  필연 광야에 가야겠다

  그곳에서 키 큰 바람들과

  말없이 오래오래 지평을 바라봐야겠다

  눈과 머리와 가슴과

  지쳐 드러누운 내 영혼까지

  거기 다 함께 이어야겠다

      -전문(p. 12)

 

  김남조 시인이 2023년 10월 10일 오전 노환으로 향년 96세. 1927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재학 중 연합신문에 시 「잔상」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목숨』 외 18권을 펴내며 한국시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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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현대시』 2023년 11월(4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