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목련 정원/ 곽효환

검지 정숙자 2024. 5. 15. 01:49

 

    목련 정원

 

     곽효환

 

 

  내 앞에 있으나 등 들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하늘 아래 가장 먼 거리를 봅니다

 

  붉게 빛나면서 점점 어둠에 잠기는 봄날 저녁

  어두울수록 환하게 빛나는 목련꽃 그늘에

  내 얼굴은 잠겨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고 깊은 심연

 

  먼 곳을 바라보는 그 사람은

  저 너머와 이곳을 잇는 열쇠 구멍인데

  아람어를 모르는 나는

  꽃그늘 아래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몸을 돌려 손 내밀면

  내 마음은 요동치며

  피고 지고 피고 지는 꽃들의 정원이 되고

  뇌우가 쏟아지는 평원이 되었다가

  낙엽 지고 눈 쌓인 설원이 될 터인데

 

  어느새 꽃잎을 다 떨군 목련 정원에서

  먼 곳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목련 한 그루를

  나는 마냥 바라봅니다

     -전문(p. 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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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2022-가을(81)호 <신작시> 에서

 * 곽효환/ 1967년 전북 전주 출생, 199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 2002년『시평』으로 등단, 시집『인디오 여인』『지도에 없는 집』『슬픔의 뼈대』『너는』. 저서『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편저『이용악 시선』『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아버지, 그리운 당신』『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백석 시그림집』『이용악 전집』(공편), 『청록집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별 헤는 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