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초파일 밤/ 김지하

검지 정숙자 2024. 5. 14. 00:56

 

    초파일 밤

 

     김지하(1941-2022, 81세)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쇠창살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 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국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요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이 감방 속으로 발을 옮기며

  두 눈 질끈 감으면

  더욱더 영롱히 떠오르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아아 참말 꽃 같네요

  참말 꽃 같네요.

    -전문(p.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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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작』 2022-가을(81)호 <특집 2/ 김지하 시인 추모 특집/ 김지하 대표시 10편> 中

 * 김지하/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1961년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첫 옥고를 치름,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1969년 『시인詩人』 誌에 「황톳길」등 5편 발표하며 등단, 시집『황토』『타는 목마름으로』『남』『살림』『애린 1, 2』『검은 산 하얀 방』『이 가문 날에 비구름』『나의 어머니』『별밭을 우러르며』『중심의 괴로움』『화개』『유목과 은둔』『비단길』『새벽강』『못난 시김새』, 저서『밥』『남녘땅 뱃노래』『흰 그늘의 길 1, 2, 3』『생명학 1, 2』『김지하의 화두』『탈춤의 민족미학』『생명과 평화의 길』『디지털 생태학』『오적』등이 있음// 아시아 ·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  국제시인회의 위대한시인상, 크라이스키 인권상, 이산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등 수상, 2022년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