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낙타는 아는 듯했다/ 김일태
검지 정숙자
2024. 1. 16. 01:25
낙타는 아는 듯했다
김일태
사막을 이해하려면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원치 않는데 속아 산 물건처럼 외롭지 않으려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불어 달려온 시간 되돌려주고 다시 나의 시간으로 무르고 깊은 생각이 났다.
체로 거른 듯한 모랫길을 걸으며 아내가 '이런 사막도 아주 오래전에는 바다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는 이 길도 예전에는 꽃길이었을 수 있다고 위안하며 모래산 표면이 물결 모양을 짓고 있는 것은 파도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태어나 사막을 벗어나 보지 않아 세상이 온통 사막인 줄로만 알고 모래로 쌓은 길과 집에 길들어 있다가 땅을 향해 자꾸 휘어져 가는 나이에 들어서야 가짜 해와 종이 달과 네온싸인을 별인 양 헤아리며 낙타처럼 걸어온 지난날이 모래알처럼 씹혔다.
형색이 너덜너덜하게 털갈이 중인 쌍봉낙타를 타고 아내와 나란히 사막을 걸어가며 지금은 상실의 시간이 아니라 생의 봄을 위한 갈무리 시간이라고 억지 부려 보는데 우리를 태우고 무심하게 가던 낙타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며 투레질했다.
-전문(p. 63)
---------------------
*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시> 에서
* 김일태/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부처고기』외 8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