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매미/ 장재화

검지 정숙자 2023. 11. 24. 00:38

<에세이 한 편>

 

    매미

 

    장재화

 

 

  여름을 대표하는 가수는 매미다. 게다가 줄곧 사랑의 세레나데만 부른다. 그뿐이랴, 하루 종일 노래하지만 목도 쉬지 않는다. 여기서 작은 궁금증 하나, 매미는 노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울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의 허물은

 

  이라는 시를 남겼지만, 매미는 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매미소리는 짝을 찾기 위함인데 울며불며 사랑을 구걸할까. 구애求愛는 눈물보다 노래가 더 어울린다. 그뿐이랴, 매미의 텅 빈 허물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의미한다.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매미는 깍딱까딱 꽁지를 치켜들면서 노래한다. 그 소리를 들은 암컷 매미가 찾아와서 짝짓기를 하고, 짝짓기를 끝낸 수컷은 땅에 떨어져 죽는다. 암컷이라고 해서 다를까. 산란을 하고 나면 뒤 따르듯이 죽는다. 그렇다면 매미의 짝짓기는 찰나의 즐거움이자 죽음이다. 종족 번식을 위한 자기 희생이다.

 

  중국 진나라의 시인 육운陸雲은 매미의 생태를 살펴본 후, 인간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에 비유했다. 매미의 머리는 갓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 이슬만 먹고 사니 청,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집을 짓지 않고 검소하게 사니 검이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허물을 벗기에 신이란다.

  그 영향이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당상관 이의 벼슬아치들의 의관과, 임금이 머리에 쓰는 익선관翼善冠도 매미 날개를 본떴다. 항상 매미의 5덕을 염두에 두고 선정을 펴라는 뜻이리라.

  문득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 국회의원의 옷깃을 장식하는 금배지와 정부 고위관료들의 휘장도 매미날개 형상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 좀 더 정신 차려 일할지도 모른다.

 

  옛 사람들은 매미를 불쌍하게 여겼다. 보름 남짓 살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겨우 깨어난 매미를 죽이는 일은 잔인하다. 그렇게 되면 하늘이 노해서 가뭄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매미의 생태를 보고 감동만 한 것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일하기는커녕, 노상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을 보고 '그늘 밑 매미신세'라고 비아냥거렸고, 문장이며 학식 등, 머릿속에 든 것 없는 주제에 쓸데없는 의론만 일삼는 사람들을 일컬어 와명선배蛙鳴蟬俳라고 비웃었다. 와명선배란 아무런 뜻도 없이 시끄럽기만 한 개구리와 매미소리를 뜻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귀에 매미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가로수며 아파트 조경수에서 들려오던 소리와는 다르다. 훨씬 가깝고 요란하다.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시 '사랑'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베란다로 나가 보았더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붙어서 울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 어쩌다 13층 우리 집까지 날아왔을까. 의도적일까. 아니면 허공을 가르는 바람에 실려 온 것일까.

  어쩌면 베란다를 장식하고 있는 행운목이며 군자란 등등, 꽃과 푸른 잎을 보고는 여기가 살만한 곳이라고 여겨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무엇이 앞을 막아 다가갈 수 없다.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신기루다. 그래서 더 슬프게 우는 것은 아닐까. 이럴 때의 매미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울음이 된다.

 

  갑자기 떠오르는 엉뚱한 생각. 저 매미를 우리 집으로 불러들여 꽃과 나무와 함께 살게 하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 집 베란다는 그야말로 운치 있는 음악 감상실이 될 텐데

  "그래, 저 매미를 우리 집의 빈객으로 초대하자" 나는 매미가 놀라지 않게 살며시 방충망을 연다. 그 미세한 움직임에도 놀란 매미, 나의 뜻과는 달리 푸르르 날아가고 말았다. 울음 같은 노랫노리만 여운처럼 남기며. ▩ (p. 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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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온문학』2023  여름(32)호 <수필>에서

  * 장재화/  2004년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수필 부문 등단, 수필집『산정화』『들꽃 속에 저 바람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