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환_암흑물질의 시, 그리고 생명의 문(발췌)/ 홀로와 창 : 장미도
홀로와 창
장미도
창의 연쇄가 쏟아지고 있다
쏟아지는 연쇄는 바깥으로부터 창을 밀어낸다
창은 바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안으로 침몰하고
기후는 섬광을 만든다 바깥이 멀어진다
창이 있고
당신은 홀로 투명하다
형태를 갖추려 애쓰면 얼음 조각은 무섭게 녹아내리고
정육면체 안에 있다 당신은
정뮥면체 안에서 홀로를 잃어버리고 있다
상자를 접는다
손톱으로 모서리를 만들고 손바닥으로 면을 만진다
상자의 손길 때문에 창은 조금 더 오른쪽으로 기울고
고추에서는 오이의 맛이
토마토에서는 망고의 맛이 생긴다
당신은 식탁 대신 투명한 창을 펼치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본다
빛나는 바깥에 밀려난 안쪽이 축적되는 것을 본다
창에서 쏟아지는 풍경은 일시적이다
잘린 손들이 입구를 연다
-전문-
▶ 암흑물질의 시, 그리고 생명의 문(발췌) _차성환/ 시인 · 문학평론가
시「홀로와 창」에서는 "창"이 있는 "정육면체"의 방 안에 "홀로" 있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의 존재 방식은 "홀로 투명하다"이다. "형태를 갖추려 애쓰면 얼음 조각은 무섭게 녹아내리"듯이 "당신은/ 정육면체 안에서 홀로를 잃어버리고 있다" 주체는 단일자로서 고정되지 않고 흘러내리고 넘치는 운동 속에 주어진다. 이곳의 공간 또한 3차원에 고정되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변형을 보여준다. 정육면체의 방 안에서 "상자"를 접는 행위를 통해서 정육면체의 방은 상자이기도 하고 상자는 정육면체의 방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정육면체/ 상자의 바깥과 안에 동시에 놓여 있다. 논리적 인과관계는 사라지고 "고추에서는 오이의 맛이/ 토마토에서는 망고의 맛이 생긴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창에서 쏟아지는" "일시적"인 "풍경"에 불과하다. 곧 "잘린 손들이 입구를 연다"면서, 이 정육면체/ 상자가 다른 형태로의 변이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p. 시 223-224/ 론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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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가을(91)호 <신진 조명/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장미도/ 1995년 출생, 202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 차성환/ 2015년 『시작』으로 등단,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